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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영국박물관 찾기

HELLO, UK

by 알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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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트라팔가 광장, 한 번 본 곳이라 더 반갑다. 어젠 이름에 익숙했지만 오늘은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조차 여러 번 본 것처럼 낯설지 않다. 버킹엄 궁에서 걸어나오며 영국박물관을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흐린 날이 대부분인 영국에 오기 위해 우산을 챙겼으면서도 왜 잠깐의 해가 나기라도 하면 도로 우산을 내려놓는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우산, 오늘도 하늘을 쓰윽 한 번 쳐다보곤 날씨가 맑겠다 생각하고 나온 아침이었다. 흐린 하늘이 곧 맑게 바뀌고 종일 해가 날 것이란 생각을 무심코 했었던 듯하다. 그러고보면 낯 선 장소만큼 낯 선 판단력이었다.


근위병 교대식을 뒤로하고 걸어나왔다. 먼발치에서 보거나 느껴야 하는 것들은 보통 그 본모습이 잘 전해지지 않는 법이다. 트라팔가 광장에 이르러 천천히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한가하게 어슬렁거릴 시간을 주지 않는 하늘, 비가 오다가 우박 내리다가 다시 비가 오다가....


젖어서 추운 몸을 이끌고 엉겁결에 뛰어들어간 맥도널드는 나 같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래도 그 이름,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런던에 왔으니 런던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 그럼 좋겠지만 나는 참 멋없는 사람이다. 별로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거나 하지 않는다. 밋밋한 여행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맥도널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작은 자리를 나눠 앉았고, 그 틈에서도 음식 하나씩은 시키더라. 1층을 돌아보아도 한 사람 앉을 의자도 발견하기 힘들다. 고심하다 지하로 내려가 보았다. 자리를 나눠 앉자 하면서 아쉬운 대로 자리를 잡았다. 내 앞에는 깍쟁이 같은 외국인 아줌마가 앉았고, 맞은편엔 어떤 아저씨가 앉았다. 궁전 앞에서는 맑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본격적으로 오늘 탐험을 떠날 텐데 날씨가 변화무쌍해 정신 차리기가 힘들다.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 일정을 생각 좀 해보기로 했다.


일단 후드를 뒤집어쓰면 방수가 되니 영국 박물관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지도상으론 꽤나 가까워 보이는 데 역시 날씨가 변수였다. 비에 그것도 모자라 우박이 점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찬 바람과 몰아치는 비 그리고 얼굴을 때리는 우박, 안내표지를 따라 걷기는 하지만 얼마나 걸릴지 알 수는 없다. 버스를 탈랬더니 충전된 금액이 없어 다시 내려야 했다. 이 하루가 날 조각조각 낼 심산인가 보다 했다. 버스 운전사가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넌 돈도 없으면서 왜 타니?' 하고 과하게 화를 낸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바로 근처가 영국박물관이란 소리였다고 해석했다. 그래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바로 여기가 영국박물관 정류장이란 말입니다!'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모퉁이만 돌면 있는 곳을 거길 가겠다고 버스에 올랐으니 어이없다 생각했을지도. 그래? 그렇담 다행이군, 찾아가 보도록 하지.


런던 여행에서 가장 고생스러웠던 날 같다. 내리는 우박과 비를 맞으며 걸어 걸어 영국 박물관을 간 날. 그러나 세상은 수고에 따른 선물을 곳곳에 숨겨두는 법이다. 여행 짐을 꾸리면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카메라 잭을 잘 치워두고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석불가인 내 행동에 기가 막혔었다. 막상 메모리를 비우려니 잭이 없었던 것. 창의력 없는 내 계산으론 가는 도시마다 사진을 찍고 필요한 사진 외에는 삭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눈앞에 카메라 숍 하나가 떠~억하니 나타났다. 부리나케 튀어 들어가 메모리 카드를 사고 싶다고 했다. 사실 어쩌면 비를 피하려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없단다. 물어보니 친절하게 다른 집으로 가란다. 위치도 알려주었다. 가게가 따뜻해 더 있고 싶었지만, 나왔다. 춥고 떨렸다.


주인이 알려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다른 가게 하나, 보아하니 카메라 관련 부품을 팔기도 하고 중고 카메라도 사고팔고 하는 듯했다. 수리도 하고....... 제대로 찾았다. 오래된 카메라들이 가게 가득 전시되어 있고 손님 한 사람은 이야기 중이다. 내 차례, 카메라를 보여주고 여행 올 때 집에다 잭을 두고 왔다고 했다. 메모리 카드를 사고 싶다고 설명했다. 아저씨께서 좋은 생각이 있다고 하시며 무언가를 내놓으셨다. 메모리 리더기였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런 것도 있구나. 카메라뿐 아니라 다른 메모리 카드들도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살았다. 그런데 난 그때 리더기를 난생처음 봤다. 그런 것을 발견하고 심지어 사서 쓰게 되기까지 한 내가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무얼 좀 아는 사람들이야 다 알았겠지만, 나는 정말 기계치 혹은 기계 비슷 무리한 걸 보기만 해도 기겁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보라, 여기저기 정말 예기치 못한 일들 투성이가 아닌가!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게 우리 삶이라던 누군가의 말은 내 앞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수많은 순간 혹은 우연은 신에게서 무르익다가 시간의 지갑이 열리면 틈을 뚫고 뛰어나와 여기저기 날뛰며 소리 지르는 게 아닌가. 옷은 속까지 젖어 추웠고 덜덜 떨렸다. 어제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서도 오늘 다시 빈 손으로 나선 내가 믿어지지 않았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가 싶기도 했다. 배낭 역시 흠뻑 젖었다. 마음 같아선 이 가게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나 사는 게 재밌는 건 마구잡이로 일이 벌어지는 듯해도 일면 우연들은 질서 정연함을 군데군데 숨겨둔다는 점이다. 옷과 배낭은 젖어 어디 한 군데 의지할 곳 없이 떨렸지만 적어도 나는 우연히 메모리 리더기를 살 수 있었고, 샀고, 비는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으며, 주인아저씨의 설명대로 가게 모퉁이를 돌자마자 눈 앞에 영국 박물관이 나타났다. 정말이지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허락 없이 뛰어들었지만 , 그런 날, 달려가면 따스하고 안락할 것 같은 영국 박물관이 모퉁이를 돌자마자 눈 앞에 나타났고, 우산 쓴 사람들은 빨려들 듯 한 방향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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