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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당신이 걸었을 언덕

안녕, 사랑스러운 파리

by 알버트



숙소에 도착해 짐을 푼 때가 오후, 숙소 주인장의 안내를 따라 해 질 녘의 몽마르뜨를 다녀오기로 했다. 지는 해를 마주한 몽마르뜨는 아름다웠다. 전철에서 내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색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몽마르뜨 언덕이 나타난다. 낯 선 도시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일은 보물 찾기 같다. 그래서 여행은 꽤나 진한 흥분과 성취감을 동반하는 모른다. 하루하루를 생존하느라 생각과 행동은 단순해지고, 작은 일에도 감사해하고 무사한 귀환에 안도감이 드는 것도 여행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생생함이다.


보이스카웃에서 오리엔티어링 훈련을 할 때 그 흥분되던 느낌을 여행 중에는 자주 느끼게 된다.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찾아가고, 낯 선 사람들 속에서 정보를 취하고, 그들을 관찰하는 것. 그럼으로써 결국 사람이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이런 것 또한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생김새가 다르고, 바로 옆에 앉아 마주 보면서도 내뱉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생경한 경험이며, 설사 이 모든 것들이 다르다 할지라도, 행복, 감사, 예의, 친절, 미소, 베풂....... 이런 것들이 가지는 힘이 크다는 것도 배운다. 낯 선 사람들과의 거리를 뛰어넘어 쉽게 가까워지게 한다는 것은, 현란한 말솜씨가 아니라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 빛과 친절한 마음 정도여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도 여행을 통해서다.
















멋들어진 경치를 감상하며 그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근사하다. 책에서나 보았던 장소를 올려다보며 걸어갈 때 나를 잡아끄는 흑인 집시들만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또 정보도 없이 길을 걸으면 오히려 불쾌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퍽 행복한 기분에 젖을 수 있다. 괜한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없으므로, 그들이 부를 때 꽤나 상냥하고 예의 있게 웃을 수도 있다. 내 의사와 상관없는 강압적인 친절을 눈치채고 강한 거절을 했다. 순간 놀랐다. 우리에게 있어 재밌는 사실은, 부정적 경험은 두려움을 남긴다.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오는 길은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의 틈에 끼어 일행인 듯 위장하려 꽤나 애를 썼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곳이었다. 푸니쿨라를 타면 이런 것 없이 편하게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럼 몽마르뜨를 쳐다보며 오르는 그 과정이 사라지는 것일 수도, 그러나 사람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니 필요하다면 고려할 사안이다.

































몽마르뜨에 올라서면 파리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파리에서도 높은 곳이라 이름 부르는 이유가 있는 듯하다. 몽마르뜨에서 사람들은 나란히 서거나 언덕에 앉아 지는 해를 마주 보고 그들의 시간을 나눈다. 그런 때가 되면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벤치에 앉거나 계단에 걸터앉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다. 자유로운 공간과 시간을 살고 싶어 하면서도 그 넓은 공간 속에서 익숙한 이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익숙한 곳에서도 외로웠으니 낯 선 사람들 속에서 외로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우린 그런 사실을 자주 잊는다.


주변을 돌아보면,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고, 지금도 많은 상점들이 오밀조밀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많은 가게들, 음식점과 한 편에서는 즉석 연주회가 열리고 나무 밑 사람들은 독서....... 교과서에서 흔히 이름 보던 고흐, 피카소가 저기 모퉁이 어디쯤 걸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설렘을 갖게된다. 눈을 감으면 동생 테오와 긴긴밤 이야기 나눴을 고흐의 고뇌가 상상되기도 했다. 세기의 화가들이 이 언덕의 거리 어디쯤 기대어 한 시대를 살 다 간 곳이 여기였겠지.


나는 고흐의 삶을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기록에 남아있는 그의 생을 읽을 때마다 깊은 슬픔과 번민, 그리고 시대를 앞 선 천재의 위대성을 경험한다. 안타까움도 포함된 마음이다. 동시대 사람들의 이해가 따르지 않는 경지에 올라, 비범성 속에 살다 후대에 이름 불리는 사람과 그저 평범한 재주로 자기 앞의 생을 살다 가는 보통의 삶, 이런 것들에 대해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가 간 길은 그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길 중에 그의 본질이 부르는 길에 들어섰고 그 길을 살아냈을 것이었다. 만약, 그가 그 시대에, 그가 가진 재주로 유복한 삶을 누렸다면 그싀 그림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고흐를 떠올리다가 책꽂이에서 고흐 전집을 찾아냈다. 매 번 그렇지만 나는 고흐 집 책장을 넘기며 그가 남긴 글을 읽을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울게 된다. 그가 가졌던 마음이, 정신세계가 고스란히 전해져 그럴 것이다.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가 도달했던 정신적 예술적 경지가 믿을 수 없다.


" 나는 내 안에 끌어내야 할 힘,

도저히 끌 수 없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큰 불길을 느끼지만,

그것이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구나.

그러나 그 결말이 설사 암울한 것이라 해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을 거야."


"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계속해서 찾지 않는다면, 나는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그때는 나에게 슬픔만이 남을 것이다."


"내가 늙고, 추해지고, 고약해지고, 병들고, 가난해질수록,

나는 더욱 멋지게 구성된,

눈부시게 빛나는 색채로 보복하고 싶다."


"내 그림이 팔리지 않는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 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종종 내가 부자라고 생각한단다.

돈을 많이 가진 건 아니지만 나는 부자야. 왜냐하면 내 작품 속에서

나는 내가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을 찾았기 때문이지."


"마을의 지붕들 위로 커다란 별 하나가, 다정하고 아름다

별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서 나는 마음속으로 너희들 모두와

나의 지나온 세월, 그리고 고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런 말들이 밀려 올라왔다.

제가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게 해주소서. 제가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어머니를 위해서 당신의 축복을 제게 내려주소서. 당신은 사랑이시며, 모든 것들을 감싸 안으십니다.

당신이 계속해서 축복을 내려주지 않았다면

저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 1882~1888 -

- 반 고흐가 말하는 반 고흐의 삶과 예술 중에서, 예경 -



빨간 동그라미 하나를 몽마르뜨 지도에 그려 넣으며 돌아왔다. 주인장이 식사를 차려주었다. 파리라는 도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던 사람, 돌아보면 최악의 시설을 갖췄던 숙소였지만 파리 시내 전철 노선을 줄줄 꿰고 음식 솜씨가 좋았던 주인장이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생각나고 때론 애잔한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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