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르조바, 조지아
입국심사대를 통과해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가까워지는 시각.
인천에서 모스크바를 지나 목적지 조지아에 도착하니 내 몸을 찬찬히 돌아보게 됩니다. 모스크바에서 조지아까지 오는 비행기에 앉자마자 잠들었더니 그다지 졸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꼭 한밤중, 시험공부하느라 잠들지 못하고 있는 그런 긴장된 밤의 느낌처럼 내 머리 어디선가 "웅~'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집에서 출발해 목적지까지 약 하루는 소요된 듯한데, 비행기에서 눈 붙인 2시간이 전부여서 그런 것도 같습니다. 잠든 정신에 잠들지 못한 몸으로 배낭을 메고 심카드를 바꿉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이런 밤 내 옆에 말 붙이고 기댈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단 짧은 생각이 스칩니다.
심카드 산 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습니다.
훨씬 낫네요.
조지아 트빌리시 공항은 새벽 세 시라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북적입니다. 트빌리시 공항엔 밤 동안 도착하는 비행기가 굉장히 많다고 콴이 알려줍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찍어둔 희미한 휴대폰 사진을 보니, 새벽 3시의 공항 모습이라고는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트빌리시 NATA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굉장한 소리의 음악이 들려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새벽 4시가 되자 일제히 세상은 고요 속으로 젖어들었고, 그 소리들은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시내 중심가의 젊음의 거리 곳곳에서 내는 소리였습니다.
늦은 도착에 시차 적응 때문인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새벽 여섯 시는 넘겨 겨우 눈을 붙이고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환한 햇살로 눈부신 아침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니, 스스로 내 몸이 녹아내리는 듯합니다. 멍한 정신, 그러나 환한 햇살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오니 차려진 아침식사.......
생각만으로도 그때 기분이 느껴져 행복합니다.
자고 나오니 차려진 아침 식사라니. 어쩌면 세상 한 부분 혹은 내 주변 곳곳에서 이런 정경이 수시로 펼쳐지겠지만, 내 경우 아침식사는 비교적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아침 멍한 정신에 콘프레이크에 차가운 우유면 든든하고 이상적인 아침인데 이토록 멋진, 누군가의 손을 거친 음식이 나를 기다리네요.
음식 맛이 골고루 내 입에 퍼지는 동안, 마음속으론 짧은 반성이 스칩니다. 나를 위해 내어다 주는 것들은 다채롭게 차려진 음식뿐만이 아니라 이들의 삶의 한 부분이 내게로 연결되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차려준 이들의 마음이 여기저기 읽히자, 음식 재료와 접시에 담긴 것들이 단지 우리 입 속으로 들어가 배를 불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음식 재료를 사고, 갖가지 양념으로 맛을 내는 시간을 거쳐, 고운 그릇에 담아 내 앞에 내밀어졌을 땐, 그들과 내가 이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방, 인사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지금껏 그들의 일부와 만나왔고, 감사하게도 그들의 정성과 보살핌으로 이렇게 몸을 지탱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이 음식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였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겨우 알게 된 것이지요.
집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냉장고를 보면서 가슴 답답해하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내어 오는 그 과정이 나 다운 인사방식이자 만남의 한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에도 스타일이 각기 다를 수 있다는 것. 즐거운 깨달음입니다.
지금껏 음식 한 그릇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던 그들의 투박한 손, 그리고 정성스럽거나 고집스럽던, 혹은 내 마음이 반기지 않았던 그들의 그 마음을 나는 잘 읽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았으니 그들이 인사해도 반겨 맞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시간을 익혀 내게로 전해진 진하고 귀한 음식,
준비 안된 내 입에서는 말을 건네지 못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을 먹고 나자 작은 새떼들이 사람들의 뒷자리를 점령했습니다. 새들을 보자 문득 집 생각이 납니다. 마당 소나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때때로 물을 먹고 멱을 감으러 날아들던 새들이 떠오릅니다. 새들의 음식을 신경 써 마당에 뿌려주면서도 필요한 이들에게 더 따듯하게 인사 건네지 못했다는 마음이 먼 길 여행지에서 맞는 첫 아침에 달려듭니다. 이 또한 여행이 주는 선물이겠지요?
어행 다음, 누군가 내 집에 오게 되면, 분명 주인이 열심히 만든 혹은 흉내 낸 음식을 맛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모습에 내가 먼저 들뜹니다. 밥을 먹고 호텔 꼭대기층으로 올라보았습니다. 멀리 나른 칼라 성이 바라보입니다. 인도 자이살메르 성 혹은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드성이 연상됩니다. 불 켜진 밤의 성곽이 닮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