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OME NIGHTS

이야기 만들기

리스본, 리스본으로

by 알버트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쏟아지는 햇살 뒤로 파란 하늘과 빛을 받은 선로가 보이고 그 위를 오가는 기차들. 아름다운 풍광에 정신이 드는 듯했다. 욱신거리는 어깨와 허리, 목소리는 가라앉고 몸은 무겁다. 오늘 포르투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아득한 길처럼 여겨졌다. 몸이 무거웠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멀리 와서도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인사차 보냈다. 내 성격으로 보아 여행한 기간 동안 자주 그들에게 사진을 보내거나 안부를 묻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래도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노란 마음을 사진 한 장으로 갈무리해둘 심산이었다.








짐을 꾸려 리스본 오리엔테 역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건너다 보이던 역은 걸어서도 금방이었다. 표를 사고, 플랫폼을 확인해 두어야 했다. 낯 선 도시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꼼꼼하게 확인해 두는 게 필요했다. 표를 보여주고 안내원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에스켈레이터를 가리키며 올라가라고 했다. 그리곤 “네가 탈 객실은 저~기 어디쯤이야.”라고 하셨다.










와.... 이 기차역....... 리스본 오리엔테 기차역은 아름다웠다. 아니 기차역이라기 보단 플랫폼이 아름답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가 탈 곳을 확인하러 올라가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를 태운 에스컬레이터가 플랫폼을 향해 올라가자 내 앞에 서있던 사람 머리 위로 드리우던 야자수 그늘. 깜짝 놀랐다. 거기서 야자수가 나타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사진 몇 장을 찍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했던 것 같다. 이 사람들, 기차역에도 스토리를 담는구만....... 이리저리 쏘다녀도 기차 시간은 한 시간 넘게 남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커피가 빈 속을 따라 내려가자 몸이 살아나는 듯 했다.


정신이 들자 플랫폼이 다시 떠올랐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게 현실화되었을까? 그리고 길 바닥, 어떻게 온 도시 전체가 그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워, 딛기 미안하면서도 걸을 때마다 행복한 바닥을 가지게 된 걸까? 나와 이들이 가지는 시간이란 의미의 차이가 존재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건물 하나를 백 년 넘게 이어가며 짓는 사람들, 때때로, 흔적 없이 사라질 운명인 내가 과연 어떤 식으로 살다 가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을 때, 의미 있게 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다짐했던 그 시간처럼,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그렇게 새겨 두는지도 몰랐다.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한번 야자수 그늘로 들어서는 황홀함을 느끼며 플랫폼에 올라섰다. 마음 같아선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몇 번이나 하고 싶었지만, 짐이 많아 겨우 참았다. 중독성 있는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걸까 싶었던 그 날.






“이 역 정말 아름답지 않아?”

“ 맞아 정말 그래.”

“ 천장이 그 나무를 닮은 것 같아.”

“ 맞아, 그런 것 같아.”

“그 나무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근데 더운 나라에 많잖아, 바닷가에도 많고.”

“알아, 그 나무. 나도 이름이 기억나진 않는데, 네가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아. 우린 지금 같은 나무를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응”


곧이어 기차가 도착했고, 출장 중이라던 그녀는 자신의 객실을 찾아가면서 내가 탈 곳을 가리키곤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멋진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우리를 멀리 데려갈 기차를 기다린다니, 정말 근사한 이야기 아냐?'




내 생각을 뒤로하고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후 포르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리스본으로 돌아올 때 오리엔테 역을 지나쳤다. 한 번 서 있었던 곳이어서 그랬던 걸까, 멀리 사라지는 역에 여러마음이 들었다. 플랫폼엔 여전히 떠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사람들이 오갔고, 야자수 그늘 아래서 그들을 데려갈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분주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네 시간을 익혀 건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