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리스본으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쏟아지는 햇살 뒤로 파란 하늘과 빛을 받은 선로가 보이고 그 위를 오가는 기차들. 아름다운 풍광에 정신이 드는 듯했다. 욱신거리는 어깨와 허리, 목소리는 가라앉고 몸은 무겁다. 오늘 포르투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아득한 길처럼 여겨졌다. 몸이 무거웠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멀리 와서도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인사차 보냈다. 내 성격으로 보아 여행한 기간 동안 자주 그들에게 사진을 보내거나 안부를 묻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래도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노란 마음을 사진 한 장으로 갈무리해둘 심산이었다.
짐을 꾸려 리스본 오리엔테 역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건너다 보이던 역은 걸어서도 금방이었다. 표를 사고, 플랫폼을 확인해 두어야 했다. 낯 선 도시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꼼꼼하게 확인해 두는 게 필요했다. 표를 보여주고 안내원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에스켈레이터를 가리키며 올라가라고 했다. 그리곤 “네가 탈 객실은 저~기 어디쯤이야.”라고 하셨다.
와.... 이 기차역....... 리스본 오리엔테 기차역은 아름다웠다. 아니 기차역이라기 보단 플랫폼이 아름답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가 탈 곳을 확인하러 올라가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를 태운 에스컬레이터가 플랫폼을 향해 올라가자 내 앞에 서있던 사람 머리 위로 드리우던 야자수 그늘. 깜짝 놀랐다. 거기서 야자수가 나타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사진 몇 장을 찍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했던 것 같다. 이 사람들, 기차역에도 스토리를 담는구만....... 이리저리 쏘다녀도 기차 시간은 한 시간 넘게 남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커피가 빈 속을 따라 내려가자 몸이 살아나는 듯 했다.
정신이 들자 플랫폼이 다시 떠올랐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게 현실화되었을까? 그리고 길 바닥, 어떻게 온 도시 전체가 그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워, 딛기 미안하면서도 걸을 때마다 행복한 바닥을 가지게 된 걸까? 나와 이들이 가지는 시간이란 의미의 차이가 존재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건물 하나를 백 년 넘게 이어가며 짓는 사람들, 때때로, 흔적 없이 사라질 운명인 내가 과연 어떤 식으로 살다 가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을 때, 의미 있게 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다짐했던 그 시간처럼,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그렇게 새겨 두는지도 몰랐다.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한번 야자수 그늘로 들어서는 황홀함을 느끼며 플랫폼에 올라섰다. 마음 같아선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몇 번이나 하고 싶었지만, 짐이 많아 겨우 참았다. 중독성 있는 게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걸까 싶었던 그 날.
“이 역 정말 아름답지 않아?”
“ 맞아 정말 그래.”
“ 천장이 그 나무를 닮은 것 같아.”
“ 맞아, 그런 것 같아.”
“그 나무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근데 더운 나라에 많잖아, 바닷가에도 많고.”
“알아, 그 나무. 나도 이름이 기억나진 않는데, 네가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아. 우린 지금 같은 나무를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응”
곧이어 기차가 도착했고, 출장 중이라던 그녀는 자신의 객실을 찾아가면서 내가 탈 곳을 가리키곤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멋진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우리를 멀리 데려갈 기차를 기다린다니, 정말 근사한 이야기 아냐?'
내 생각을 뒤로하고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후 포르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리스본으로 돌아올 때 오리엔테 역을 지나쳤다. 한 번 서 있었던 곳이어서 그랬던 걸까, 멀리 사라지는 역에 여러마음이 들었다. 플랫폼엔 여전히 떠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사람들이 오갔고, 야자수 그늘 아래서 그들을 데려갈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