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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OME NIGHTS

이건 뭐니?

Hola, Spain

by 알버트


첫날 숙소 옆 소위 뷔페식당을 발견했을 때 주저 없이 들어갔다. 14유로 정도 했던 식사비, 모든 음식을 맘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지만 오직 와인은 한 잔만 가능하다고 했다. 입구에서 줄지어 나를 기다리는 각종 샐러드와 야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육류와 햄류 빵류 기타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입맛으로 3주 정도를 여행했다. 아삭 거리는 신선한 야채를 듬뿍 씹어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유럽인들의 입맛에 맞는 숙소 아침 식사는 나로 하여금 매일 같은 음식만 먹도록 했다.








여행 떠난다는 핑계로 친구한테 강탈하다시피 했던 볶음 고추장도 무겁다는 이유로 두고 왔다. 리스본에 도착한 날 그 고추장 하나만 담아왔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속으로 탄식했지만, 이건 친구한테는 비밀이다. 그는 내가 자기가 사 준 고추장을 들고 간 줄 안다. 여행 다니면서 입에 대지 않던 빵과 달콤한 음식을 먹기 시작한 지 약 3년,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만 먹을 수 있었다. 아무거나 나는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먹는 것만 잘 먹는 모양이었다.






샐러드만 한 접시 들고 와 우아하게 먹었다. 아니 사실 우걱거리며 먹었다고 말해야겠다. 정신이 들자 스테이크 코너에 가서 고기며 생선도 하나씩 들고 왔다. 우아하게 화이트 와인도 한 잔 곁들였다. 참 맛있을 것 같지만, 질기고 별로 맛있지 않았다. 옆 테이블 젊은 총각 앞에 접시가 대여섯 개는 쌓여있었다. ‘대체 저 많은 음식을 다 먹었단 말이야?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시네’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내 앞에 대 여섯 개의 접시가 쌓였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거기 젊은 아저씨’ 하고 역시 속으로 생각했다. 콩알만큼 담아 와도 일단은 새 접시에 담게 되니 이런 일이 빚어지는 듯했다.






커피와 과일까지 먹고 마시던 물 병을 들고 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찾았다. 지나다니다 보니 팁을 올려두는 바구니가 있었다. 상냥하게 웃으며 나에게 와인을 따라주던 웨이터가 생각나서, 그리고 질기긴 했지만 열심히 스테이크를 굽던 총각을 보며, 또 이 많은 접시를 누가 어찌 닦을까 하며 팁을 담아두고 가기로 했다. 주머니를 휘저어보니 동전이 한가득이다. ‘동전 부자로구나’ 생각하며 꺼내보았다. 2달러짜리와 1달러짜리를 골라내고 나머지를 팁으로 담을 생각이었다. 얼마나 많이 모았으면 2달러와 1달러짜리가 한 손 가득 잡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뒀는지도 모를 텐데, 나는 정말 너무 착한 거 아냐?’ 자뻑을 날리며 시크하게 동전 바구니에 와르르 팁을 던져두고 나왔다. 휘적휘적 걷는 걸음이 기분이 좋았다.






이튿날은 마음을 먹고 바르셀로나를 탐험하기로 한 날이었다. 전철표를 사려고 자동판매기 앞에 섰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휘휘 저어보니 절거럭 거리는 동전 소리, 자신만만하게 동전을 한 주먹 꺼냈다. 크기도 숫자도 제 각기 다른 작은 동전들이 수북하게 딸려 나왔다.


‘응? 이거 뭐지?

‘작은 동전들이 아직 남아있었어?’

‘어?’ 2달러랑 1달러짜리 동전들 다 어디 갔지?’

.......


그제야 사태를 깨달았다.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되는 거였다. 왼 손에 쥔 동전들을 던진다는 것이 오른쪽 손에 집은 한 움큼의 동전을 던진 모양이었다. 그것도 기세 좋게.


많은 팁을 주려고 했던게 나의 진심이었다 믿자고 열심히 자신을 달랬다. 착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라 기억력이 감퇴해서 벌어지는 일이란걸 나는 알 듯 했지만 차마 그렇다고 믿기 싫더라. 그나저나 던진 동전 정말 많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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