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리스본으로
이야기 하나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 긴 줄을 통과해 수도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내 일정에는 몇 군데의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벨렘 탑과 발견 기념비 그리고 베르나르도 미술관이 그것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미술관을 가고 싶었는데, 시티버스 정류장이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거기 어디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한 바퀴 둘러보며 물어볼 사람을 찾았다. 지도를 아무리 읽어봐도 급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영어 표기가 되어있지 않은 글씨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 어디서 들리는 한국말. 오~ 드디어 한국사람....... 감격스러웠다.
성큼성큼 소리를 따라 걸었다. 단체로 관광 중이신 분들이었다. 가능하면 가이드를 찾아서 물어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일행에게 다가가 베르나르도 미술관이 어딘줄 혹시 아는지 물었다. 내 잘못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가이드가 이 근처를 설명해 준 뒤 사람들에게 시간을 준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물어봤는데, 아저씨는 묻자마자 이렇게 손사래를 치며 함께 온 두 사람 사진을 찍어주기에 바빴다.
“ 글쎄 저한테 묻지 마세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모르는 건 상관없지만, 적어도 모를 때 하는 일반적인 태도에서 아저씨가 보여주는 말투는 조금 벗어나 있었다. 소중한 그들의 시간을 뺏은 듯 해 미안해해야 하는 건가 싶은 마음보다 먼저,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묻지 말걸. 난 한국인이면 나하고 한 마음인 줄 알았네.......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보여준 태도를 보며 조금 실망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들이나 나나 나이는 비슷해 보였는데. 내가 나를 보니 상처받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반갑지 않은 그들이 야속하다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둘
리스본에서 신트라와 로카곶은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좋은 코스 같았다. 운이 좋게도 내가 묵은 호텔은 Rossio 역 근처에 있었고, 전철역이 아닌 이 기차역도 전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본 건물이어서 어딘지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읽은 안내책자에 의하면 유레일 패스를 가진 경우 신트라까지 무료라고 했고, 실지로 Rossio역에서 기차를 탈 때 역무원이 거침없이 문을 열어줘 신나게 탑승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신트라에서 내릴 때.......
탑승권을 밀어 넣으며 쉭쉭 나가는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당황한 시간을 보낼 때 한국인 아가씨 둘이 있었다. 나는 한국말을 너무 좋아하는지 들리자마자 달려들어 물었다. 유레일 패스 있어서 무료로 타고 왔는데, 어떻게 나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저흰 패스 없어서 몰라요.” 하고 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 혼자 서 있는 나를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 역무원 옷은 아니었지만, 급한 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성큼 다가와 버튼을 가리키셨다. 역무원과 통화 가능한 벨이었다. 감사하여라, 나는 지금도 왜 그 할아버지가 거기 기둥에 기대어 서계셨는지 모르겠다. 신트라 역은 규모가 작아 역무원도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그 아저씨 아니었으면 일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궁금하다.
이야기 셋
로카 곶에서 돌아와 신트라 순환버스를 타고 부지런히 돌았다. 사람들은 페나성을 좋아했지만 왠지 나는 무어 성에 이끌렸다. 무어 성은 순환버스 중 두 번째로 내리게 되어있다. 표를 사고 걸어 올라가며 부지런히 지도를 보았는데, 이 성은 왠지 거대한 밀림으로 들어가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을 자아냈다. 저 앞에 혼자 가는 여성 여행자를 먼발치 동무삼아 걷고 있을 때 내 옆을 지나가는 한 무리의 아가씨들, 한국말이 들렸다. 나도 모르게 돌아가 이 성을 한 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한 아가씨 왈,
“우리 얼마 안 걸었어, 그치않아? 한 시간이면 충분할 거예요.”
고맙기도 하여라. '그럼 그렇지, 이렇게 원래 사람들이 친절하단 말이야.' 고맙단 말을 남기고 총총 헤어졌다.
어두워진 신트라 역에서 리스본 Rossio역으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엔 눈썹달이 떠 그렇지 않아도 쓸쓸해지는 내 마음을 흔드는 것 같았다. 옆에 앉은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내가 건네주는 과자를 마다하시면서 괜찮다고 하셨다. 이해가 갔다, 아까 두 사람은 과일과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셨다. 그걸 보던 내가 배가 고파 가게에 다녀온 길이었기 때문이다.
벤치 뒤쪽에서 반가운 한국말이 또 들렸다. 모른 체 하려다가, 무어 성에서 길을 알려줬던 학생들 같기도 했다. 아줌마가 되고 보니 독특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된 터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아까 무어 성에서 나한테 길을 알려줬었나요?"
"아뇨, 저희들은 무어 성 안 갔는데요."
그러고 보니 신트라 역에서 지나쳐갔던 친구들 같기도 했다. 무어 성에서 상냥하게 웃고 길을 알려주던 여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없이 쳐다본 하늘이 기차역 건물 사이로 예쁜 달을 띄우고 있었다. 아름다워 위로가 됐다.
이야기 넷
신트라에서 Rossio역으로 돌아오는 길, 지친 몸을 이끌고 좌석에 앉았다. 가고 싶었던 무어 성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고, 페나 성에서 일몰을 본 뒤 어두워져서 신트라 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열 차 안, 반대쪽에 동양인 둘이 앉았다. 왠지 한국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한국말, 거기다 인상을 보니 착해 보였다. 급할 때 한국인이라고 말을 걸었다가 그들의 싸한 태도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어, 외국에서 한국인에게 무언가 다가가려 하는 태도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내심 결론 내린 참이었다. 멀리 한국을 떠나 온 그들에게 한국과 연관되는 게 싫은 것일 수도 있고 경계심을 들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어쩌다 보니 눈이 마주쳤고, 미소로 아는 척했다. 우린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약 한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청년은 카이스트 재학 중 스위스에서 인턴 중인 학생이었고, 한 명은 대학 다니다가 취직한 상태였다. 묵언 수행 중이던 스님이 말문이 트이듯,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 내가 나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파리에서 리스본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도 동양인은 나 혼자, 리스본에서 내가 묵는 호텔에선 이상하게 동양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인을 만나니 참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리스본에 도착해서도 역을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유레일 패스 소지자는 SOS 버튼 누르는 곳에서 끊임없이 역무원을 호출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나오지 않던 역무원은 함께 기차를 타고 온 한국 남학생이 찾아가서 직접 말하고 나서야 나타났다. 고맙기도 하지. 역무원 말고 한국인 학생 말이다. 아줌마 혼자 두고 제 갈길 가지 않고...... 의리 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고마움에 마음이 뜨끈뜨근했다.
약속 없는 여학생 한 명이 나와 저녁을 먹었고, 몇 시간인가 지났을 때 우연히 길을 가던 그 남학생이 우릴 발견했다. 어찌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지. 셋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좋은 밤이었다.
계산하려고 주머니를 뒤질 때, 내 휴대폰이 사라지고 없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그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계산을 끝내고 내 숙소 근처까지 바래다주고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사라졌다. 호텔로 돌아와 온 몸을 뒤져도 찾을 수 없었던 휴대폰 때문에, 결국 한밤중에 경찰서로 갔다. 밤 열두 시였고, 돌아오니 한 시 반이었다. 아마도 역에서 내려 걸어올 때, 누군가 내 뒤편에 가까이 있었는데, 그때 가져간 것 같았다. 휴대폰을 넣고 지퍼를 잠가뒀는데 그걸 열고 가져갔다. 온갖 자료들과 여행 사진들이 그 안에 있었고, 연동된 게 너무 많아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었던 선량한 그들의 이름도 연락할 방법도 아무것도 모른다. 나에 대해 연락할 만한 것도 말해주지도 않았다. 여우숲에서 연구소를 한다고 말했고, 여우숲이란 단어만 두어 번 말해주었다. 나이 많은 아줌마한테 그들이 아는 척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관심이 있고 인연이 있다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겠지. 그들이 내게 한 말이 기억난다.
“사고 나신 건 없죠, 소지품 진짜 조심하셔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