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여행처럼
대저 토마토 다섯 개를 꺼내 꼭지를 땄다. 접시에 대고 먹기 좋게 잘라 긴 포크와 함께 공부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밤늦게 무언가를 먹는 것을 자제하는 편인데, 게눈 감추듯 한 접시를 먹고 난 뒤, 나도 모르게 김치냉장고 토마토 박스에서 네 개를 다시 꺼냈다. 배가 부르다. 밤늦게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오랜만이긴 해도, 내일 아침 휙 돌아갈 체중계만 두렵지 않다면 야참은 언제든 진리가 아닌가.
째깍거리는 시계 두 개가 가는 시간을 끊고 있다. 3월이면 여행을 가곤 했는데, 지난 기억들을 하나둘씩 곱씹는 것으로 여행을 대신하는 중이다. 세상을 향해 떠났던 모험의 순간들을 떠올리자 가슴이 뛴다. 사람들 속에 혼자 던져진 듯 외롭고 고독했던 순간과, 그 속에서 보이던 나란 사람의 존재감. 여행을 떠나야만 나와 가까워지고 돌아오면 잊게 되는 자신을 잘 알아, 때때로 숨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것인지도 모르지.
우리는 언제 젊어지는가. 배움을 시작할 때다. 나이가 몇 살이든 배움을 시작할 때 우리는 더듬거리고, 뒤뚱거리고, 두려워하고, 떤다. 바로 이것이 젊음이다. 이때 우리는 어려지고 젊어지고 그리고 영원히 늙지 않는다. 한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말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고 역설하는 것 같았다. 내게 나이 듦이란 익숙한 삶에 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에 주저앉아 매움이 없는 삶이라면 젊음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준으로 보면 나이는 젊은데 삶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배움이 필요 없는, 너무 뻔한 길로만 가려는 청춘들이 많아진 것이다. 오히려 도전 정신을 잃지 않고 인생 이모작, 삼모작에 나서는 중년이나 노년들에게서 젊음이 느껴진다.
무엇이 젊은것인가? 자아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늘 새로운 모험으로 자신을 내모는 사람들, 그들이 젊은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젊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남기신 책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있다. 그 책 초입에서 멋진 글귀를 찾았다. 새로 시작한 공부가 무모한 것은 아닌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닌지, 과연 내가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천둥처럼 갈등하며 사부님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내게로 덤벼든 문장. 사부님께서는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겨두시고, 책장을 넘기는 우리에게 이런 선물 같은 날을 주신다.
젊은이로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무의식적 고민은 접어두어도 좋다는 허락으로 여기기로 한다. 세상 이목으로부터의 눈을 자신에게 돌리고, 오로지 나에게 묻고 하루를 선물을 받은 듯 기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릴케는 시를 잉태해 분만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이 만들어낸 고통을 즐기다 보면 고통이 아름다운 비탄의 소리를 내게 되고 그 소리가 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까운 사람이 멀어져도 괴로워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면서 가깝다고 느꼈던 사람도 멀어진 것이니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기뻐하고 축하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릴케가 얘기하는 고독이었다, 누구와도 같이 갈 수 없는 자신만의 길에 들어서는 것, 그것이 바로 고독의 선물인 성장이다.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한 시간 말이다. 고독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다. 그러니까 홀로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자신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릴케의 생각이었다.
어째서 당신은 어떤 불안감이나 고통이나 우울함을 당신의 삶에서 쫓아내려 합니까? 그런 것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르면서 말입니다.
혼자되는 시간을 슬퍼하지 말고, 때로 우울과 좌절이 다가와도 성급히 도망치고 벗어나는 데만 열중하지 말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에게 다가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우울도 불안도 고통도 쫓아내려 하거나 성급히 없애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들이 끝난 뒤 우리가 부쩍 성장해 있을 것을 상상한다면, 실제로 그건 매우 소중한 삶의 선물이 틀림없다. 다만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해야 하는 것.
사부님은 고독과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꿈을 찾아 달려드는 젊음은 아름답다고 책에 쓰셨다. 그러다 사부님이 당신에게 던지신 질문처럼 문득 나의 운명에 대해 새삼 궁금해졌다. 내가 꿈꾸던 그것, 이루겠다고 덤벼들었던 지난 시간, 그리고 현재. 현실에 발을 딛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 삶이란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는 한, 우린 젊음이란 생기로 반짝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다가드는 좌절과 우울 불안과 방황 그리고 고독과 번민, 이 모든 어두움이 감추고 있는 반대편을 기억해 낼 때 지난한 그 과정도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게 다시 물었다. '나의 운명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다 가도록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일까?'
종일 책과 논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의원 가서 침을 맞고 돌아온 시간을 제외하곤 집에 있었다. 어제 시작한 운동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덜덜 떨려서 그랬다는 것은 핑계일 것이다. 이 책 저 책 들추며 인생에 대한 단서를 발견해나가는 이런 시간, 하루에 하루를 더 해 갈수록 내가 던진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온 쓰임새대로 쓰일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