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날이 좋아서, 저 창 밖에 펼쳐진 가을날이 너무 아까워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마당의 풀 위로 미리 떨어진 감나무 잎은 뒹굴고 여름 내내 새들과 숨바꼭질하던 블루베리 나무는 어느새 작고 귀여운 잎들로 치장했네요. 갖가지 붉은 잎이 곱습니다. 봄 앞을 걷던 산수유는 붉디붉은 열매로 그 노란 꽃 자국을 채운채 치렁치렁 늘어져 누웠습니다.
요즘 학교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학위만 끝나면 배낭을 메고 떠나리라 그리고 한동안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때가 있었는데, 이젠 떠나지 못한 아쉬움마저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이런 요즘, 학교는 정말 어떤지요. 그대는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으니 그 안의 일을 내가 알 길이 없습니다. 어지러운 시절에,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것이 최선이라 선택했던 그 많은 일들의 결과, 학교에서 사는 모두는 안녕한지요.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한 지 여러 달이 흘렀습니다. 벌써 두어 달 있으면 겨울방학이 다가오네요.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결과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것들 또는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부작용들....... 멀리서 학교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아슬아슬하고, 안타깝고, 걱정도 됩니다. 학교는 어떤 일들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가끔 텔레비전을 봅니다. 그때마다 거기 나와 앉은 교육 전문가들의 주장과 조언 속에서 학교의 역할,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일, 혹은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과제는 과연 무엇인지, 학교는 근본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답해야 하겠구나 싶습니다. 이제 그런 시기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재앙 같고 한편으론 신의 선물 같기도 한 이 시절, 많은 것들이 재편되고 개편되고 변화와 전환의 이름으로 거듭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것을 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시대의 요구에 의해. 이전에는 그토록 외쳐도 바꾸기 어려웠던 일들이 쉽게 변화되고, 그런 변화가 당연시되는 시절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부디 이 즈음에 나의 사랑하는 학교도 그런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택의 결과를 보여주어야 할 텐데 생각합니다. 교육이란 대체 어때야 하는지,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이란 어떤 모습으로 걸어야 하는지, 너무 힘겹지 않게, 스스로 변화하고 혁신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학교를 멀리서 본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선생님도 알다시피 나는 이미 오래전 학교를 떠났어도 여전히 선생 같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잖아요. 학교에 속한 선생님들, 학생들 그리고 학생들의 식구까지 모두 다 행복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 하는.
그러고 보니 어느새 퇴직한 지 7년이 지났습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벌써 그렇게 됐어요. 이젠 하나둘씩 퇴직자가 생겼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놀라운 소식이었던 같습니다. 학교에 두고 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학교는 늘 나에게 가까웠고, 언제나 안부가 궁금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마음도 달라지겠지만 오늘의 나는 여전히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대들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나는 비교적 잘 지냅니다. 선생님도 알다시피 원하던 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세계가 닫히기 전 몇 년간 부지런히 여행도 했고, 미뤄두었던 공부도 마쳤고 또 오랜 세월 꿈꿔왔던 그 길로 조금씩 걸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학교를 떠난 뒤 심하게 병치레를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또한 매일 나이 들어가고 자주 잊고 또 가끔 반성하며 다시 시작합니다. 나날이 변해가고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을 살피며, 나 혼자 이 좋은 광경을 보기 아깝다 여기기도 하고, 때론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고 가끔은 나를 실망시켰던 사람들을 잊자 다짐도 합니다. 그렇게 매일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뒤, 그 잠시의 꿀 같은 휴식시간에 드르륵 선생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는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때 같아요. 지금은 시간을 아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 보다 어린 선생님이지만 선생님은 나에게 무척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소박함이 무엇인지, 부지런함이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이며 남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알려준 사람입니다. 고민을 토로하고 간절히 평화를 원했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던 그 시절의 선생님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선생님을 보면 제 방식으로 평온해지고 있구나, 나이 들고 있구나 느낍니다. 현명하고 지혜롭고 슬기롭고 부지런해서 선생님을 보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비록 선생님은 학교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에 발맞추어 걸으니 기쁩니다.
하늘을 쳐다보다 선생님 생각이 나서 이 글 씁니다.
2020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