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그대의 말은

당신이 흔들릴 때 SHIFT하라

by 알버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가 쓰는 ‘말’에 드러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는 세상을 바라보고 설명하는 ‘나의 해석 방식’이 담긴다. 축적된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비추어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은 같은 일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광경은 우리가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나는데 상대의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하는 의미로 이해하고 반응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상대의 말을 내가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그가 하는 말에 반응하고, 이 반응 양상은 두 사람의 상호작용과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저는 좀 이성적인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물어볼 때“맞아요, 내가 보기에도 당신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잘 아시네, 당신은 참 냉정하고 잘 따지긴 하지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 “나는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 쉽게 적응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내 앞에서 “진짜 그래, 내가 보는 너는 낯 선 환경에서도 두려움이 없이 적극적이고, 사람들에게 개방적이더라. 정말 넌 무척 용기 있는 사람 같아, 부러워”라고 환대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아 맞긴 해, 내가 볼 때 넌 진짜 주관이 없는지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비위도 맞추고 아첨도 잘하더라”라고 응대하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해석이나 행동, 반응은 내가 선택한 결과이다. 어떤 사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결정된 감정이나 반응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상대의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를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발생한 사건과 사고, 상황과 관계를 ‘자기식대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사람들의 표정을 ‘자기에게 보이는 대로’ 읽는다. 우리가 만약 대화를 하던 중이라면 상대가 하는 말은 나를 거치면서 내가 부여하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칫 그 사람이 말하려는 정확한 의도와 같지 않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나의 의사가 정확하게 전달되기를 바라지만, 이런 이유로 대화 중에 오해가 생기고 이런 오해로 말미암아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와 같은 대화방식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교사와 아동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 학생들 간에서도 볼 수 있고, 부부 사이에서도 흔히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선생님이 하는 말’에 대해서이다. 교사가 하는 말이 중요하고, 영향을 미치고, 의미 있게 전달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교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학생들, 학부모 그리고 발생한 일에 대해 얼마나 다른 행동, 태도, 표현이 가능해지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의 말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나는 교사를 영향을 받는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기보다는 영향력을 만들어 내고 작동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그렇게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 그리고 자신과 가족을 향한 의미 있는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에서, 일상적으로 어떤 사람이 하려는 말이 나에게 와 닿을 때는 나의 해석이 작동되고, 그 해석에 따라 내 감정과 행동, 감정이 반응함으로써 상대를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교사와 아동 사이에 적용시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하는 말을 들을 때 선생님은 자기 사고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선생님이 하는 말이 아이에게 가 닿을 때도 형성된 도식과 인식의 범주 안에서, 아이의 경험 내에서 이해될 것이란 이야기이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두 사람 사이 힘은 균형은 보통 교사 축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교사가 먼저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교사에게는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그 멋진 권한이 있고,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출발선에 아이나 학부모보다 먼저 서게 되는 신나는 우선권도 주어져 있다. 그러니 이제 그 권리는 누리고 행사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같은 말을 긍정적으로 되돌려 주는 사람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우리 마음은 자연스레 따스한 말을 하는 사람에게로 향한다. 나는 매우 그렇다.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사실을 숨기거나 표현을 미룰 때가 있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분명 그렇다. 교사와 아동의 관계 역시 그럴 것이다. 만약 아동이 하는 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수용하는 교사가 있다면 아이들은 그 교사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않는데, 문제 행동을 하는 데 어떻게 좋게 보라고 하느냐’ ‘그런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를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하느냐’ 같은 질문은 교사나 부모들과의 상담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아이들을 위해 애썼지만 실패와 좌절을 맛본 사람들은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영향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로서의 자신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 마음을 방패막이로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재빨리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 이들에게 가끔 되묻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이에게서 문제를 찾아내는 눈이 아주 잘 발달해있다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는지, 아이를 정말 자세히 보는지, 아이가 잘하는 것을 못 보는 것은 아닌지, 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우리가 초 긍정 민감성 안테나를 장착하고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 주파수에 걸리는 아이들의 좋은 행동은 무궁무진하다. 그물을 던지면 ‘은빛으로 파닥이는 물고기’가 올라오듯 ‘아이들의 빛나는 순간’이 잡힌다. 나는 그것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내 동료들이 그 맛을 느껴보면 좋겠다. 그 속에 있는 순간은 부족함과 문제 투성이의 교사임에도 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내 동료들도 그런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적극 초대하고 싶다.


생활하다 보면 화나고, 밉고, 실망한 마음으로 괴로울 때가 있다. 우리는 그 마음을 다스리며 산다. 교사들도 그럴 것이다. 나도 자주 그랬으니까. 그럴 경우 나는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랩톱 끼고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무언가 끄적거렸다. 그러면 짜증스럽거나 화나고 분통 터지던 마음에 쉽게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최악의 날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세트로 하다 보면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은 정리되고, 있었던 일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나아졌다. 어쩌면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에 대한 의심을 망각하기 위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도를 하는 목적은 벌어진 상황을 바라보는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 세상을 보는 내 눈, 해석 방식을 달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해보면 노력한다고 해서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이 모든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내가 이렇게 한다고 저 아이들이 변하기는 하나’ 의심되던 순간이 많았다. 수없이 마음속으로 시작하고 아이들을 지켜보고 변화를 기다리던 시간은 오롯이 내가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자신과 하는 싸움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끊임없는 회의와 실망과 좌절을 견디면서,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하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변화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나타나지도 않으니까.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들이라면 이 말에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매일 수없이 시도할 테니.


선생님인 그대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그대를 통과한 세상이 그대 앞의 세상에는 어떻게 투영되는지 알고 싶다. 그대가 학생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그리고 세상을 향해 어떤 말을 내놓는지 정말 궁금하다. 세상의 문제와 예외, 강점과 단점 중 어디에 주목하는지, 그대의 세상에 들어온 아이와 학부모, 그대의 가족과 동료는 당신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며, 그래서 그대가 쓰는 말에는 무엇이 담기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리게 된다.


창문을 닫게 만드는 저녁 바람을 타고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드문드문 들린다. 물절구에 받아둔 물을 마시러 바쁘게 날아들던 물까치, 곤줄박이는 사라지고 없다. 어둑어둑 해지는 산 밑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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