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라오스
밤, 방비엥 메인 도로. 샤워를 하고, 투어 예약과 비엔티엔 행 표를 예약 해 둔 뒤 마음 가볍게 어슬렁거리며 나갔다. 어둡지만 길 양쪽으론 관광지라면 어느 곳이나 그렇듯, ATM과 식당들, 그리고 특별히 여기 방비엥에는 각종 레포츠를 안내하는 간판들이 여러 군데 보인다. 루앙 프라방의 기품 있는 면모에 편안했던 사람들은 방비엥에서는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방비엥이란 소도시는 아름다운 경관을 중심으로 즐길 수 있는 레포츠 위주로 발달해 있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싼 비용으로 이를 즐기려는 서양의 젊은 여행객들이 모여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방비엥은 그에 걸맞은 분위기가 곳곳에 스며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다소 멀어지고 있는 둣 보였는데, 라오스라면 어딜 가나 루앙 프라방 같을 것이라 여겼던 마음은 방비엥의 밤거리를 보면서 깨어지고 있었다. 공개된 곳에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듣긴 했지만, 한국식당 할아버지의 그 말씀이 진짜인지 경험해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었어도 왠지 그 말이 맞는 듯한 느낌을 방비엥의 밤거리는 보여주는 듯했다.
메인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뭐라도 먹을 게 있을까 싶어 한바퀴 둘러보는 중이었다. 만약 눈에 띄지 않는다면 도로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호텔 식당이 8시까지라는 문구를 읽었었다. 들어갈 만한 곳이 깔끔하고 큰 카페 하나가 눈에 띄었지만 빵을 먹기가 싫었고, 모퉁이 중국 식당만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음~ 어딜 가나 중국인이 태반이구나. 그러니 이런 라오스 방비엥 시골에서도 중국 식당이 저리 시끌벅적하지 싶다. 루앙 프라방에서도 그렇더니 방비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인 중에선 95% 넘는 사람들이 중국말을 썼다. 아니 거의 97%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근래 들어 중국인들이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의 긴 연휴기간과 겹쳐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메인 도로 길이 끝나면서 가로로 길이 편 쳐지는 딱 거기까지 확인하고 돌아섰다. 그냥 과일이나 사가지고 가서 저녁을 해결해야겠다 싶었다. 이름 모를 음식을 먹고 거북해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둣 싶었다. 막 뒤를 돌아서는 찰나,
"어, 어!"
"어, 어 너!"
"헤이~!, 너 괜찮니? 아까 밴에서 네가 힘들어하는 거 봤는데, 좀 어떠니?"
"오, 지금은 괜찮아. 고마워, 내 걱정해줘서!" "어디 가니? 저녁 먹었니?
"아니, 저녁 먹으러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고."
"그래? 그럼 우리랑 같이 먹는 건 어때?"
"음... 그래 그러지 뭐......."
루앙 프라방에서 방비엥으로 올 때 함께 밴을 타고 온 사람들이었다. 6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산길을 꼬불꼬불 달리기 때문에, 그런 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쉬운 길 같지 않아 보였다. 세상 참 좁다. 14명이 손님으로 탔었는데, 나와 서양인 커플 둘을 제외하고 몽땅 중국인이었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크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던지, 혼자 음악만 듣던 그 누구도 그들이 중국인인 줄 한 눈에 알아보았으리라. 그러던 그녀들이 꼬불꼬불한 도로가 끝도 없이 펼쳐지자 입을 다물고 잠을 자거나 더러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결국 세 명은 참지 못했다. 차를 세우기도 하고....... 멀미에 취약한 이들에게는 힘든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방비엥에 도착해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털털거리는 밴을 합승해 메인 도로까지 왔을 때, 가장 먼저 내리는 나를 향해 바이~를 외쳤었고, 그보다 이른 아침 밴을 타러 툭툭을 타고 호텔을 돌 때, 내가 탄 툭툭 에 올라앉으며 자신들이 먹던 바게트를 함께 나눠주겠다고 했던 그녀들이었다. 어찌 보면 여행을 통해 가장 친절했던 외국인들이었던 셈이었다.
여행하다 보면 그래도 이웃이라고 서양인보다는 반갑고, 동양인을 만나면 혹시라도 그중 한국 사람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예전엔 외모와 차림새를 보고 얼추 맞출 수 있었는데, 이번 여행에선 번번이 실패했다. 뭐, 단체 관광객들은 대부분 구분 가능해도, 젊은 부부나 친구들끼리 오가는 젊은이들 같은 경우에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한 눈에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세련되어지고, 차림새가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말을 트고 오버액션을 취하는 그들을 보노라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그 시크하고, 타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적은 듯한 모습과는 대조적이긴 하지만, 첫 눈에 알아채기란 힘든 법이다.
졸지에 중국인들에게 우~우 끌려 그 불야성을 이룬다면서 인중샷을 찍었던 식당으로 들어가 앉게 되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음식을 시키는 것에서 우리와 중국인은 굉장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하지만 음식이 나올 때마다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고, 조금씩 돌려가면서 맛보고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졸지에 그들에게 외국인이 되어버런 나는 그들과 쉴 새 없이 인증샷의 주인공이 되었어야 했다. 그게 더 우스웠다. 내가 어쩌다가....... 나, 참. 허허... 어쩌면 중국 인터넷에 내 사진이 돌아다니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어찌나 좋아하면서 여러 컷을 찍었던지. 그 사진들에는 내가 대체로 웃고 있는데, 좋아서라기 보다는 그 상황이 너무 뜬금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래서 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길을 가다가 '이야~ 저 식당에 중국인들이 한가득이구나..... 하여튼 많다... '하고 생각했는데, 채 5분도 되지 않아 그 속에서 음식을 시키고,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찍히고 그러고 있었으니........ 하여튼 뭐 그래서 그 상황이 내내 우스웠었다.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포도 두 봉지를 샀다. 그쪽 일행이 다섯이나 되어 내 포도의 세 배를 사서 한 봉지 억지로 쥐어 주었다. 내 밥값의 두 배는 넘을 돈을 과일값으로 썼다. 일행 중 한 분이 남자분이셨는데, 라오 비어를 기세 좋게 쨍쨍 부딪히며 음식을 시키시더니, 이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혼자 계산을 하신 듯했다. 고마웠던 마음을 포도 한 봉지로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과일 가게 앞에서 역시나 포도를 사고 있을 때, 그들이 포도를 사러 왔었다.
그렇게 그들과 몇 번 마주치면서, 좋은 웃음을 서로 흘리고 헤어졌다. 그 흔하게 묻는 전화도 이메일도 왜 그랬는지 묻지들을 않았다. 어차피 떠듬거리는 영어 이외에는 통하지 않아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여전히 참 좋은 웃음과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기억 한 편을 자리하고 있다. 내게 좋은 선물을 주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