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라오스
사실, 라오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방비엥을 들를까 말까 한 참 고민했었다. 떠도는 인터넷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루앙 프라방이 라오스의 정수이자 정체성을 보여주는 도시 같았고, 방비엥에는 젊은이들이 뛰어들어 환호할 것들이 가득한 곳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난 그리 젊지도 레포츠를 즐기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므로 루앙 프라방만 들렀다 올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라오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육로를 이용하여 루앙 프라방에서 비엔티엔까지, 거의 열두 시간 이상을 하루에 내려오는 것은 썩 매력 없어 보인다는 판단을 했고, 방비엥을 거쳐 오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방비엥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았다. 레포츠 종합 선물세트 같은 느낌조차 들었다. 이름도 멋진 블루라군을 시작으로 주로 물과 관련된 레포츠들이 많았지만, 짚라인 같은 스포츠는 고소공포증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글을 줄을 타고 이리저리 날아보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줄 하나에 의지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울창한 밀림을 나는 그 기분,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없는 듯 느껴질 그 순간, 그때 느낄 온전한 자유,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 부러웠었다.
최근에는 열기구를 타는 사람들도 있어 보였다. 묵는 숙소 앞에서 두둥실 열기구가 떠오다가 내려앉고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니 그랬다. 방비엥에 도착한 날 마당에서 마주친 한국 아저씨 세 분은 블루라군으로 가신다고 했다. 멋진 4륜 오토바이크를 즐길 것이며, 역시나 짚라인을 타러 갈 것이라 하셨다. 그러고 보면 방비엥은 활동적인 남자애들이 오면 거의 매료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한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방비엥을 지나치지 않고 들른 이유는 사실 딱 하나였다, 카약킹을 하겠다는 것. 다른 활동들은 관심이 없었지만, 유유히 흐르는 쏭강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흐르는 쏭강을 따라 내려오는 것. 노을이 지는 모습을 감상하기도 하고, 급기야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클래식을 들으며 물살을 타고 떠내려 오는 것, 그렇게 카약킹을 하는 상상만 해도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얼마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물과 하늘과 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한 그 순간은 얼마나 특별할 것인가? 이런 내 식의 환상이 나를 방비엥으로 끌어들인 셈이었다.
카약킹을 가기 위해 툭툭 에 올랐다. 보아하니 거의 모두가 짝꿍끼리 왔다. 혼자 걸어 다닐 땐 모르지만 가끔은 혼자라는 게 외롭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날은 운 좋게도 혼자 온 사람이 나 말고도 한 사람 또 있었다. 중국에서 온 아가씨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녀와 짝이 되어 많은 시간을 즐겼다. 동굴 튜빙을 마칠 때까지, 그녀는 정말 좋은 짝꿍이었고, 서로를 자주 챙겨주었다. 카약킹이 끝나고 돌아갈 때, 우린 그냥 좋은 동무로 하루를 잘 지냈고, 쿨하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대신 저녁은 투어에서 만난 한국인 젊은이들과 먹게 되었다. 나로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외국인인 줄 알았던 그들이 한국인임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외국말보다 한국말이 훨씬 쉽고 사람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오신 거예요?”
“네”
“그러시구나, 여행 많이 하셨죠.?”
“아니, 별로요. 이제 좀 해보려고요.”
젊은 그녀는 카약킹을 하는 동안 자신의 휴대폰으로 멀리 있는 나를 몇 컷 찍어주었다. 그럼으로써 좋았던 하루를 확실하게 기억하게 해 주었다. 배가 뒤집어지고, 모든 물건을 담은 가방이 물에 둥둥 떠 내려갔던 기억, 코치가 가방을 건져 나를 따라왔었고, 뒤집어진 보트를 잡고 물살을 타고 떠내려 가던 기억. 그리고 물 속에서 배를 향해 기어오르던 순간과 노를 저어 물살을 타고 춤추듯 흘러가던 그 느낌까지. 이 모든 것도 노를 젓던 꽤 근사한 인증샷 덕분에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보트 전복사고는 내가 아니라 너무 씩씩하신 아저씨 두 분이 코치들 말 듣지 않고 모험을 감행하시다 부딪히고 뒤집어진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뒤따르던 우리 배는 그들을 구출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두고 급히 보트에서 코치가 내리자 내 보트 역시 중심을 잃고 기울어지더니 한 참 뒤에 뒤집어지고 말았다. 나도 떠내려가고 내 모든 물품을 담은 가방도 물 위에 떠 내려갔고, 코치는 그 가방을 구출해서 가져왔다. 나도 구출되고 그 가방도 무사히 귀환했다. 나나 사람들이나, 무사히 보트에 오르게 되고 정상을 되찾으면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게 물에 빠진 물건들에 대한 것이다.
이쯤 되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클래식을 들으며 노을을 보는 바로 그 장면 속에 있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물론 그러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카약킹을 마친 시간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인데, 더 늦은 시간에 시작한다면 가능하기도 하겠지. 그러나 아름다웠고 충만했고 그것만으로도 족한 시간이었다. 물론 다음에 하게 된다면 처음 해 본 때보다 훨씬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몇 가지 내가 했던 것과는 달라야 한다. 카약킹 또는 튜빙 등 방비엥에서 물과 관련한 활동을 즐기러 갈 때에는 몇 가지 기억할 팁이 있을 듯하다. 준비물을 챙기면서도 이런저런 고민을 했던 부분이긴 한데, 하루 또는 반나절을 할애해 튜빙이나 카약킹을 즐기러 갈 때는 먼저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 있게 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는 바르는 자외선 차단제를 수시로 덧발랐지만, 난 우아하게 스프레이식 차단제를 여러 번 뿌렸었다. 단, 이 것도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할 수 있다. 일단 시작되면 모든 물건을 팀에서 주는 방수가방에 담아 철저하게 묶게 되므로 쉽게 꺼내서 다시 덧바르고 하기가 어렵다. 점심시간이나 튜빙 시작하기 전, 카약킹 시작하기 전 이런 때 재빠르게 꺼내어 살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난 저녁때쯤에는 정말 까매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 옷차림에 관해서도 궁리하다가 가긴 했다. 지나고 보면 차라리 물에 빠져도 처지지 않는 소재의 긴 옷들이 유용할 것 같다. 면 소재가 아닌 기능성 소재들은 물에 빠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마르므로 짧은 웃옷보다는 긴 웃옷이 나을 것이다. 그 날 짧은 소매를 입은 것을 여러 번 후회했다. 더우면 물에 적셔 입으면 된다. 날씨가 매우 뜨거우므로 빨리 마르고 젖은 옷은 덜 덥게 해 주었다. 또 흰옷 계통을 입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 산 흰 색 티셔츠를 입었었는데, 동굴 튜빙과 카약킹을 즐긴 후 돌아와 보니 튜빙 할 때 잠겼던 부분이 특히 누레졌었고 빤다고 해서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가급적 어두운 계통의 옷이 낫다. 아니면 절대 물에 들어가지 않고 튜빙을 즐기거나 카약킹을 즐기는 신공을 발휘하면 되긴 하다.
카약킹을 하러 갈 때 가장 어리석었던 행동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간 것이었으며, 가장 현명했던 행동은 휴대폰을 지퍼백에 넣고 잠근 뒤, 다른 지퍼백에 넣고 또 잠그는 이중 잠금장치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배터리 등도 모두 지퍼백에 넣고 잠근 뒤 가져갔었던 것이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방수백에 넣고 입구를 목졸라 담았더니 튜빙과 카약킹으로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으면서도 멀쩡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휴대폰은 물에 빠져서 고장 나고 지갑이나 배터리 등 모든 물건이 젖어 못쓰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 가급적 빈 몸으로 가는 게 가장 편하다. 물은 거기서 줬다. 방수백도 줬다. 옷은 젖어도 갈아입기 힘들므로 마르기 쉬운 옷이 낫다. 휴대전화를 즐길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그것도 참고할 것.
카약킹을 하는 동안은,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긴 여유를 부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앞을 주시하며 노를 저어 나아가야 하므로, 느긋하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깜찍하기 짝이 없는 내 식의 발상이었다는 게 혼자 내린 결론이다.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물에 빠지지 않고 앞을 향해 전진해나가는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작은 보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딱히 없고, 물건들은 방수백에 담겨 고이 묶여있으므로 그 속에서 꺼내고 말고 할 수도 없었다. 여유만만의 젊은이들이야 휴대폰도 꺼내서 기세 좋게 사진도 찍더라만, 하긴 그 덕에 나도 몇 컷 얻어 찍히긴 했었지만, 생각보다 보트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써야 했었다.
돌아와 샤워하고 한 참을 쉬다가 카약킹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서 만났다. 한국 식당을 찾았다 했다. 먹지 않고 지내면 잘 지낼 수 있지만, 단 한 번 만이라도 한국 음식을 입에 대고 나면 그때부턴 본능처럼 한국 맛을 갈구하게 된다. 몇 번 경험해보니 그랬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한국식이 된다. 연장자이므로 내가 냈다. 고맙다고 2차 가서 그들이 커피를 사고 케이크를 시켰다. 어제의 중국 식당 건너편에 근사한 가게로 들어갔다. 다음날이면 방비엥을 떠날 준비를 해 놓고 나와서인지 마음도 가벼운 시간,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더니 밤이 콸콸 소리를 내며 세차게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