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인디아 : 자이살메르
다른 이들이 생김새만으로도 아름다운 낙타를 타고, 멋진 자태를 뽐내며 도열할 때, 낙타의 다리 밑, 그 발과 가까운 위치에 선 나는 나에게 물었다.
"이 순간 나는 진정 자유로운가?"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그랬다. 낙타를 타는 일정이 있는 것을 알 때부터 두어 번 생각했던 일이었다. 과연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걸을 수 있을까? 가능하면 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감고 상상으로 낙타 등에 올라탄 것 같은 시물레이션을 해 보면 끔찍했다. 걷는 곳이 모래가 많은 푹신한 곳인지 물어보았다. 비교적 그렇다고 했다. 또 최악의 경우 가다가 내릴 수 있는지 묻기도 했다.
낙타를 한 번 보고 나서 타든지 않든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드푸르에서 자이살메르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옆을 지나는 낙타를 보는 순간 그 아찔한 높이에 고민 없이 결정했다.
"나는 낙타를 타지 않겠습니다. 대신 지프로 이동하겠습니다."
오케이를 받아냈다. 그러할 생각이었지만, 막상 출발할 때 난색을 표했다. 지프가 일이 있어서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 주고 다시 오는 것을 난감해했다. 낙타를 타고 걷는 시간이 약 삼십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프 대신 낙타 곁에서 걷기로 했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고마운 마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고, 낙타의 리듬에 맞추면 된다고 위로를 했지만, 내 인사는 웃음으로 대신했다. 나도 알았다. 나도 견딜 수는 있었을 것이다. 삼십 분, 이 꽉 물고, 쥐어짜고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있으면 언젠간 그 순간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찔한 공중에서, 더구나 일정한 간격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리는 그 상황에서도 내 가슴은 적어도 통증을 견디고 남아주기는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하고 싶지 않았다. 이 좋은 시간에, 여기 서서 두 발로 걸으며 사막을 느낄 수 있는 선택이 내게 남아있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취했다.
사람들을 태운 낙타를 따라 걷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내 곁에 수많은 낙타의 발들과 또 각 낙타를 이끄는 낙타몰이꾼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걷는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알고 보면 사람을 태운 낙타를 끌고 그들이 자주 걸었을 그 길이었다. 그들이 그런 순간에 했을 생각이 궁금했다. 물을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눈동자와 얼굴을 보며 상상했고, 자주 고개를 돌려 사막을 바라보고 낙타를 탄 사람들도 올려다보았다.
낙타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날리는 모래먼지로 조금 고통스러웠고, 또 푹푹 빠지는 모래들이 가끔 걸음을 더디게 했지만,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낙타들이 날리는 모래먼지를 이리저리 바람의 방향을 피해 옮겨 다녀야 했지만, 그런 순간에도 내 정신을 자유로운 상태로 유지하려 애썼다. 그 어떤 고생스러움이나 피곤함 또는 낙타 등에 올라앉지 못한 그런 마음이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나를 보호했다. 낙타 등이었다면, 펼쳐진 사막은 거저 무미건조하게 느끼며 그 시간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그 기분을 느끼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니 대신 걷는 것을 택한 사실을 후회하는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낙타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사막과 석양에 어울리는 그들의 움직임은 그림처럼 사막의 풍광으로 녹아들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한 곳에 있다는 그 사실이 조금 외롭기는 했어도, 내 높이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을 그들은 볼 수 없다며 스스로 위안했다. 스스로를 평온함 속에 가두는 그런 재주는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사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낙타의 행렬과 멀리 사막의 모습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들의 눈이 되어 상상으로 보려 애써보았다. 그럼에도 낙타들의 움직이는 다리와 생명력을 느끼며, 살아있는 사막에 푹푹 발을 디디며 걸었던 그 시간은 특별했다. 낙타몰이꾼들을 느끼며 걸었던 사막의 그 시간은 강렬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자유로움은 특정한 장소 정해진 상태나 상황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가 마주하는 선택의 매 순간 속에서 취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꽤나 숙련된 통제력과 조절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마음가짐을 비교적 자유롭게 취할 수 있고, 그것이 어떤 환경에서건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그 삶이 그리 무겁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상태라 하더라도 고소공포증을 완전히 극복하기엔 무리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높은 건물이 아니기에 꿈이라도 꿔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딴에는 용기 내어 오르던 앙코르와트의 계단에서, 채 여덟 계단도 딛지 못하고 혼절했던 경험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로 남아있었다. 가고 싶었던 히말라야 트레킹은 계곡을 건너는 공중다리를 보는 즉시 그 끔찍한 사진을 내려버렸다. 그랬다, 꽤나 노력했지만 그리고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긴, 살면서 이런 공포증 하나쯤 있어야 아쉬운 것도 있고 두려운 것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나와 대비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인간의 신비로움을 깨닫게 된다. 우린 참 같으면서도 다름을 지닌 존재라는 겸허함을 배운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않게도 하고, 한 편 참으로 공평하다는 생각도 한다. 나쁜 하나의 이면엔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 하나씩을 숨겨두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 우주는 우리 인간을 축복하는 것 같다.
하고자 하는 그것, 또 그 외 선택 가능한 일들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산다. 그런 매 순간 속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인 일인지, 우리에게 허한 자유로움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행복감을 준다.
*첫째 주인장 사진과 아래쪽 사진 두 장은 사진작가 우쓰라님의 사진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