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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선> 시즌 1 - 결재선 아래의 사람들 EP 13

성과는 회사가 보지만, 고생은 서로가 본다

by 초연

회사는 성과로 움직이고,

사람은 고생으로 움직인다.

이 두 가지가 같은 방향을 향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반대로 흐를 때,

팀장은 가장 먼저 그 충돌을 맞는다.


성과는 문서로 남지만,

고생은 기억으로 남는다.


---


어느 날 오후,

경영층 보고가 끝난 뒤 임원이 말했다.


“좋습니다. 성과가 잘 나왔네요.

계속 이 페이스로 진행하세요.”


그 말 속에

밤샘으로 버틴 팀원들의 눈,

주말 근무로 지친 현장의 어깨,

수십 번 갈아엎은 보고서의 새벽들이

모두 빠져 있었다.


성과는 회사가 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회사 시스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걸 기록하는 사람은

팀장뿐이다.


---


팀원들이 퇴근한 뒤,

한 직원이 내 자리에 들렀다.


“팀장님, 오늘 보고 진짜 잘 나왔습니다.

좋은 말 많이 들었죠?”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문득 생각했다.


보고서의 성과는 내가 받았지만,

지난 48시간 동안의 고생은

그와 팀원들이 했다.


회사에서 성과는 위로 올라가고,

고생은 옆사람에게만 남는다.


그래서 팀원들은

회사보다 팀을 먼저 믿는다.


회사와 전쟁을 하면서도

조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서로의 고생을

옆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


회의 중,

나는 팀원들의 표정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누가 가장 피곤한지,

누가 어깨가 굳었는지,

누가 말은 없지만 마음이 무너져 있는지.


성과는 회사가 가져가지만

고생은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다.


그래서 팀장은

성과를 챙기기보다

얼굴을 챙겨야 하는 사람이다.


그 얼굴을 지켜야

성과도 뒤따라온다.


---


그날 밤,

현장 관리자에게 메시지가 왔다.


“팀장님, 내일 일정은 문제없습니다.

다만 사람들 좀 챙겨주십시오.

사람들이 팀장님 믿고 많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 말이

하루의 어떤 성과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성과는 회사가 보지만,

고생은 서로가 본다.


회사는 칭찬하지 않아도

사람은 사람을 기억한다.


그 기억이

팀을 붙잡고,

팀장을 붙잡고,

마지막에 회사를 붙잡는다.


---


퇴근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회사는 무엇을 봤을까?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무엇을 봤을까?’


성과는 회사의 언어고,

고생은 사람의 언어다.


팀장은

두 언어를 동시에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다음 편: 〈팀장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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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략기획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이 일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과 결정에 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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