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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17. 2019

찢어지는 마음의 서사

늦은 밤 이른 새벽, 영화 '버닝'을 봤다.

늦은 밤 이른 새벽, 영화 '버닝'을 봤다. 옆 상영관에서 어벤저스가 상영 중인 것 같다. 벽을 넘는 진동이 전해졌다. 신경 쓰였다. 부디 영화 중 침묵의 순간에 다가올 내 안의 속 울림을 방해하지 않길 바랐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다.


현실에는 시나리오가 없다. 누군가 말을 걸면 그에 맞는 대답에는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생각이 필요하다. 순발력인 센스의 차이라고도 하지만, 둘은 연습이다. 영화가 영화일 수 있는 이유는 시나리오를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닝’은 과감하게 현실에 도전한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는다. 보여줄 뿐이다. 일부러 헛갈리게도 하지 않는다. 흔들리는 건 관객뿐이다. 아니, 종수(유아인)를 바라보는 관객들.


찢어지는 사건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단면은 복잡하다. 찢을 때마다 달라지는 종이의 단면처럼, 멀리서 직선은 다가가면 갈수록 복잡한 굴곡이 느껴진다. 사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손으로 만져야만 알 수 있다. 찢어진 마음의 감촉도 그렇다.


찢어졌기에 더 잘 탄다. 단면이 넓을수록 불에 타는 면이 많아진다. 비닐을 손으로 늘여 불을 붙여보자. 타고 있다는 말보다 사라진다는 말이 적당하다. 종이를 태울 때도 찢어서 태우곤 한다. 버닝은 찢어지는 마음 태우는 영화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는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2010)이 떠오르기도 했다. 현실적이라 어색했던 미장센이 아쉽다.


롤랑 바르트는 “독자는 저자의 죽음을 통해 탄생한다”라고 말했다. 내 안의 감독과 배우를 죽여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 같다. (2018.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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