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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Sep 29. 2019

POE

“원준아! 얼른! 여기!”


정례가 급하게 원준을 찾는다. 그녀는 상점 안에서 ‘CROATIA’가 적힌 작은 열쇠고리를 보고 있다. 원준은 손가락을 입에 댄 채, “이모! 제발 조용히 좀 말씀하세요.”라면 뛰어왔다.


다급한 정례는 원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일행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다른 열쇠고리도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고민했다.


가게는 한산했다.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돈을 세고 있는 사람 외에는 정례와 원준뿐이다. 계산대의 점원 둘은 알아듣지 못할 말로 대화하며 웃었다. 원준은 설마 자신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걸까 의심했지만 그걸 따질 여력은 없다. 물론 하지도 못했다. 몇 년 전, 일본 백화점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How much?”를 알아듣지 못했던 일본 점원은 뚱한 표정만 지었다. 이곳은 그나마 유럽이라지만, 해외에서 뭘 따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원준도 지도를 파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원준의 아버지는 출국일부터 터키와 발칸반도가 나오는, 지중해가 한눈에 그려진, 또 손바닥만 한 지도 타령을 하고 있다. 원준은 보이는 대로 사 오겠다고 10번 정도 대답했다. 11번째 타령까지는 듣지 않을 기회였지만, 지금은 이모 챙기기에도 벅찼다.


“이렇게 4개 살 거야. 얼른 계산하고 따라가자!”


함께 온 일행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념품을 사기 위해 몰래 빠져나온 정례와 원준이었다. 아무리 트로기르가 작은 동네라고 해도 일행을 놓치면 엄청나게 피곤해질 상황이다.


“이렇게만 사면 돼요? 확실하죠?”


어제 정택은 회사 동료의 기념품을 혼자 사러 갔다가 길을 잃었다. 정택은 정례의 큰오빠다. 원준은 진택을 찾아다니느라 유럽 구석의 도시의 골목을 30분 정도 뛰었다. 자다르의 골목은 미로였다. 덕분에 쇼핑은커녕 관광도 즐기지 못했다.


겨우 정택을 찾았지만, “줄 사람은 15명인데, 14개 샀네”라며, 다시 가자고 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걸 판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정택은 듣지 않았다. 결국, 원준은 또 미로를 헤맸다. 원준은 투덜대자, 이모들은 영어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혼자 보내느냐 나무랐다.


“아니다. 이건 CROATIA라는 글씨가 없잖아. 어디서 샀는지 적혀 있는 게 좋지 않아?”


정례는 열쇠고리 하나를 다시 원래 자리에 둔다. 다른 열쇠고리들을 들다 놓다, 몇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원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 소리를 내며 떨어진 열쇠고리를 줍기 시작했다. 그사이 정례는 마음에 드는 열쇠고리를 발견했는지 이내 계산대로 향했다.


“원준아. 얼른 가자!”


정례도 이런 상황이 미안했는지 말이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아까보다 더 바빠졌다. 들고 있던 열쇠고리 더미를 계산대에 올려놓더니 점원에게 말했다.


“유로 오케이?”


수다 중이던 점원은 미적대며 열쇠고리 하나를 집더니 바코드를 찾았다. 떨어졌던 열쇠고리를 줍고 정리한 원준이 정례 옆으로 와서 다시 말했다.


“Sorry. How much?”


점원은 열쇠고리를 놓더니 천천히 말했다.


“Please. One moment. Enjoy your life.”


(1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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