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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Sep 28. 2019

어떤 찬가

2017년 시즌에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했다.

승리의 찬가는 응당 패자에 대한 배려로부터 시작하는 것. 당신들은 강했다. 부정하지 않겠다. 정말 강했다. (저들 팬이라면 그만 읽으라.)


하지만 거기까지. 우리가 더 강했다. 당신들이 너무 강했기에, 강한 당신들을 우리가 이겼기에 이렇게 기쁘다. (진정 여기까지 읽은 것인가. 남은 것은 상처 뿐. 위안하지 않겠다. 당신들은 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그래. 어떤 기대부터 그려야겠다. 한때 신이라 불리던 투수의 초구를 받아친 꽃, 누가 꽃으로도 때리지말라 했던가. 검고검은 하늘 위로 솟은 순백의 별, 저 아래 3루를 내려보며 지나 왔을 지름 7.23cm의 볼, 내가 선 외야 펜스 앞에 나타난 108 매듭의 작고 짜릿한 점, 그 오묘한 것이 내 눈 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승리였다.


미약한 인간의 유일한 적은 의심이다. 아, 시간은 고통이어라. 고통은 삶이어라. 어찌하여 신은 1과 10 사이에는 아홉이라는 영겁의 이닝을 두었던가.


‘이렇게 쉽게 끝나도 될까’ 수없이 되뇌인 의심이 실제가 됐다. 의심은 실현됐고 우리는 절망에 한걸음 가까워졌다. ‘질 수도 있다.’ 이제야 웃음으로 말하건대, 담대함은 평범한 자의 몫이 아니다.


1점, 또 1점, 1점, 다시 1점과 1점, 그리고 1점.


1점 차이가 되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을 것이다’ 싶었던 안도는 삶에 대한 방만이었음을 반성한다. 스포츠는 그런 것. 작은 팬의 마음조차도 죄책감으로 둔갑시키는 것. 옆에 앉아 두 손 모아 기도하던 한 팬은 읊조렸다.


“만약 이 경기를 진다면 오직 내가 방심한 탓이다.”


아, 츠바이크여. 극단적인 위기만이 일치단결이라는 장관을 만들어낸다는 당신의 예언은 왜 그렇게도 정확한가. 수십가지의 이유로 만들어진 찰나의 순간, 운명의 추가 잠시잠깐 우리 쪽으로 기울었고, 우리는 흔들리는 운명을 잡았다. 저 높은 곳을 향하는 왼손! 그가 막아냈다. 위기는 끝났다. 그리고 막았기에 가능하며, 넘어졌다면 볼 수 없었을 그것. 승리.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높이 든 왼손이 보여준 어떤 확신과 다짐, 우리의 끝이 여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다짐이 우리에게 창조적이고 충동적인 힘을 일깨웠다. 이것은 승리의 찬가다.


삶의 모든 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니, 단 한 순간도 천 년을 주고 되살 수 없다. 그것은 역사에서나 한 인간의 삶에서나 마찬가지. 순간의 주인이 된 이들에게 축복을, 그들을 지켜본 이들의 순간에 영원을.(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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