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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Sep 23. 2019

을지로 서브웨이 단상

을지로 섭웨이에서 샌위치를 먹고 있는데, 한 외국인 가족이 들어왔다.

을지로 섭웨이에서 샌위치를 먹고 있었다. 한 외국인 가족이 들어왔다. 두 아이가 신나게 뛰어다녔다. 둘 다 6살이나 7살로 보였다. 뭐가 그리 좋을까. 휑하던 매장이 순식 간에 복작거렸다. 햇볕을 피해 시원한 곳으로 들어와 그랬나 보다.


딸 아들은 매장의 끝과 끝을 찍으며 내달렸다. 그 와중에도 그들 부모는 “노 페퍼”라며 주문을 이어갔다. 직업병일까.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영어로 주문받는 아르바이트생의 존재와 최저임금의 관계다. 내겐 한국말로도 어려운 서브웨이 주문하기를 영어로 받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적응 문제라고 해도, 난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방금도 하란대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저 아르바이트생은 잘도 받아내고 있다. 심지어 바로 전 손님은 중국인이었다. 그들 역시 영어로 주문해 받아갔다.


의문이 든다. 영어회화 능력은 갖춘 아르바이트생이 최저임금을 받아도 될까? 최저임금의 능력은 무엇을 말할까? 직장일까? 직무일까? 아니면 몸의 노동일까? 머리의 노동일까?


영어주문받아 서브웨이 샌위치를 만드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니 면접도 어떻게 치렀을지 궁금해진다.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영어 회화는 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최저임금은 준다”라고 말했을까?


최저임금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영어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일까? 요즘엔 대단한 능력도 아니란 말일까? 한글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


둘째는 저 외국인 가족은 왜 을지로에 왔을까다. 내가 아는 선에서 을지로에 올 이유는 평양냉면뿐이다. 국제정세도 그렇거니와 이게 가장 설득력 있다.


하지만 평냉을 먹고 와서 또 서브웨이에 왔다고 생각하니 앞뒤가 맞지 않다.


시멘트 벽 골목의 여운을 간직한 쇠락한 구도심. 을지로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힙플레이스를 찾아왔을 수도 있다. 그들 손엔 론리플래닛 코리아가 들려 있었다. 찾아보니 ‘을지로 골목여행’ 챕터가 있다. 분카샤, 호텔 수선화 등 최근 을지로를 핫한 곳으로 만들고 있는 스몰 멋집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도 의심스럽다. 딸 아들 둘에, 유모차 탄 아이 하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이모로 보이는 한 분까지 8명이 함께 좁디좁고 공사자재 널려 위험한 골목길을 지나서 적어도 2, 3층은 올라가야 하는 저기 힙플레이스를 간다고? 믿기지 않았다.


누군가 그들에게 을지로를 추천하면서 뉴욕의 브루클린이라고 소개한 건 아닐까? 저 가족은 어디로부터 걸어왔을까? 또 다음은 어디로 갈까?


햇볕이 나른하다. 올림픽공원에 돗자리 깔고 누워 잠이나 자고 싶다. 그리고 눈뜨면 토요일 아침이면 좋겠다.(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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