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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20. 2019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요

장률의 춘몽을 보고

봄을 상상하면, 꽃이 그려진다. 연하게 붉은, 우유 위에 피를 한 두 방울 떨어뜨리면 돌게 되는 그런 색을 가진 꽃. 그래서 벚꽃이 그렇게도 좋은가 보다.


하지만 영화 ‘춘몽’은 흑백이다. 그렇다고 있던 색이 거세된 느낌은 아니다. 보는 내내 색은 존재하나,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할까.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꿈은 무슨 색이었나, 색깔이 있었나 의심이 들었다. 당연히 기억 안 났다.


이상스럽게도 꿈은 금세 잊히고 만다. 사람은 잠들 때마다 꿈을 꾸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거라던데, 겨우 의식을 한다 해도 적어 놓지 않는 이상 꿈의 자리는 기억에서 쉽게 밀려난다. 경험의 강력함인가. 결국 언제, 어디서 ‘꿈을 꿨다’라는 행위만 남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꿈같았어요”라고 말하는 건 ‘정말 행복했어요’와 ‘하지만 곧 잊히겠죠’라는 의미다.


춘몽은 데자뷔 같은 영화였다. 앞뒤가 잘린 꿈의 흔적 같았다. 특히 영화 중 나온 노래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말아요>와 백두산에 갔지만 안개 때문에 천지를 보지 못했다던 예리를 위해 주영이 적어준 시가 좋았다. 잊힐까 걱정되어 적어놓을 정도로. (17.08.20)


오래전 당신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돌아오라고 손짓하던 고향은

당신 대신 늙어가고 있어요

백두산이 반백이 되고

천지 안의 눈물이 마르기 전에

당신을 그곳에 데려다주고 싶어요

당신을 보낸 나는

떠나지도 보내지도 않겠지만

백두산의 안개를 밀어내는 건 또 다른 안개이듯

천지의 물을 흘려보내는 건 또 다른 물이듯

그리움을 밀어낸 그리움의 자리에

제자리 한 뼘쯤 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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