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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26. 2019

우리들의 섬을 찾아서

장 그르니에, <섬>

프랑스 사람의 책은 읽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들의 저녁식사 시간이 보통 세 시간을 넘어가는 것처럼 지루할 정도로라는 말일게다. 그저 ‘밥을 먹는다’는 이 짧은 말을 하기 위해 밥의 맛, 입 안에서 부드러움, 점성도의 차이, 이 밥과 저 반찬에 대한 사연까지도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글을 책에 담는다. 어떤 학문을 배우려 할 때 그에 관한 이론서를 읽고자 한다면 프랑스 학자가 쓴 서적이나 프랑스에서 공부한 학자의 글은 우선 피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 문체와 문장의 난도란 알만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삶의 고단함 속에서 진지함의 다른 뜻을 알게 되는 시기에 다시 프랑스 책을 읽으면 또 다르다. 같은 글이었음에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리니. 보지 못했던 시선, 참신한 언어와 맛깔나는 문장들 그리고 그것은 밀가루 반죽이 제빵기에서 빵으로 부풀어 오르듯 우리의 머릿속은 팽창되고, 어느새 우리는 그 맛에 매료되고 만다.


장 그르니에도 그랬다. 그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구인가’ 모두 다른 각자의 인생이라는 하나의 물음을 두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많은 대답을 이끌어내고 확장시킨다. 몇 편의 글로 우리네 인생이 이렇게까지 기쁘게 또 슬프게 될 수 있을까. 음악적 유연함과 엄숙함. 막연하게 체험한 감격과 불안의 순간들은 그의 페이지 안에서 아름답게 재생된다. 그 단어, 그 문장, 그 이미지. 눈과 손이 닿을 때에 마음속에서 은근히 피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낀다. 한낱 독자의 이 작은 감동을 위해 수없이 절망했을 역자에게 찬사를.


대단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섬에 대한 생각들, 지중해의 태양,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와 개의 죽음, 자신의 제자였던 카뮈에 대한 추억, 꽃의 향기,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 세 시간 동안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듯이. 시인 김종삼이 노래하던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일까.


분명히 존재하는 가난과 고통 앞에서 태양의 찬란함을 노래한다는 것은 오만하다. 차라리 저녁식사 세 시간을 최저임금으로 채우리니. 더 많은 자본주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야만적인 행복에 이미 길들여져 있고, 먹지도 못하는 책에 그 돈을 써버린다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모두들 특별할 것 없는 인생, 우리는 우리 자체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야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처참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들에게는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섬세한 사람이 필요하다. 당신의 친구, 당신의 안경, 당신의 부모, 당신의 신발 그리고 당신의 매력을 구체적으로 ‘매혹’이라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당신, 섬에서 ‘장 그르니에’를 만나보시라. (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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