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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Oct 03. 2019

여름이 오는 신호

동준은 소리쳤다.


“그냥 가시라고요”


정례는 한 걸음 옮기고 다시 동준을 쳐다봤다. 잠시였지만 긴 순간이었다. 눈이 마주쳤다.


“아! 시발!”


동준이 가방을 내던졌다. 친구들은 그제야 말리기 시작했다.


“대리님 그만 하세요.” “야 왜 그래.” “가자, 가자.”


한 명은 동준의 팔을 잡았고, 또 한 명은 허리를 잡았다. 정미는 떨어진 동준의 가방을 주웠다.


“놔바. 저 아줌마는 왜 나한테 지랄하는 건데. 한 번 물어볼라고 그래. 좀 놔봐.”


세네 걸음 정도 떨어져 있던 정례는 다시 동준을 봤다. 동준의 욕지거리에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사람들, 맥줏집을 들어가던 사람들, 편의점 앞에서 담배 피우던 사람들의 눈이 쏠렸다.


10분 전쯤, 맥주로 한껏 취했던 동준 일행은 2차를 가자며 문을 열었다. 맥줏집 문이 밖으로 열렸고, 하필 그때 정례가 지나갔다. 정례의 양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한쪽에는 비닐봉지에는 쪽파 네 단, 다른 한쪽에는 2kg 밀가루와 식용유가 있었다. 동준이 여는 문이 정례의 비닐봉지를 쳤다. 정례는 동준을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몰상식한 것들”


동준은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정례에게 되물었다.


“네?”


2초 아니면 3초 정도 정례는 동준을 응시했다. 깔보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단번에 알 수 있다. 마치 조선시대에 양반이 상놈을 바라보는 그 시선. 동준은 처음이었다.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했냐고요?”


동준이 정례에게 다가갔다. 정례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때 계산을 마친 정미가 나왔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정미는 준석에게 물었다.


“왜 저래?”


그때 정례가 다시 말했다.


“참 천박하네요.”


동준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라고요?”


한걸음 떨어져 보던 정미는 신형복 선생의 글을 떠올랐다.


신영복 선생은 교도소 살이는 여름보다 겨울이 낫다고 말했다. 수 가지의 여름의 장점을 무색하게 해 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고.


선생이 지냈던 교도소의 좁은 잠자리에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37℃의 열 덩어리일 뿐이다. 생멸 줄과도 같은 옆 사람의 체온은 불덩이로 변한다. 이를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이라고 했다.


사계절은 축복이 아니다. 불행을 감춘 여름이 오고 있다. (1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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