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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Sep 27. 2019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 사람에게 말했거든요

파스칼 키냐르의 <로마의 테라스>를 읽었다.

판화 작가의 생을 그리는 소설답게 ‘판화에 찍힐 종이는 어디일까?’ 계속 고민하게 했다. 그렇게 ‘여기가 맞다’ 하면 읽어나가다 보면 ‘반대 아닌가?’ 싶고, 또 한참을 읽어가면 이 판화는 ‘하나가 아니라 4개가 모였구나’ 싶다가, 끝에 가서는 47개의 판화가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지만 아직 잉크를 묻히지도 않았다. 내가 본 판화의 모습이 종이에도 그대로 그려질지 모르겠다. 그래서 두렵다.


눈을 감고 17세기의 주인공을 떠올려본다. 상상이 어렵다. 문득 난 요즘 나 읽기 좋으라는, 너무 연애편지가 같은 책을 많이 읽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다. <로마의 테라스>는 내게 쓰인 편지가 아니다.


다만, 육체의 문장들과 사랑과 욕망을 속삭이는 문장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맹인이 점자를 만져 읽듯, 판화 작가가 손끝으로 느껴 동판을 새기는 것처럼, 사랑의 행위 또한 그와 같다. 첫 읽기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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