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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Oct 05. 2019

아무것도 세우지 말라

패럴림픽을 앞두고, 통일대교 위에 쓰레기 버리고 간 어떤 의원의 지역구를 떠올리며 쓴다.


때는 2005년, 바다 건너 일본 시네마현에서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이 100년 전 러일전쟁 당시 독도를 시네마 현에 편입했음을 기념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을 제정했다는 것이다. 작은 돌섬은 자기의 위상을 새삼 증명하듯 또다시 한일 간 정치·문화·사회적인 격렬한 공방의 주인공이 되었다. 국민들은 서로 자기 국가 영토성을 증명하기 위해 몇백 전 남의 나라 고지도를 뒤졌고, 독도를 규정한 조약을 공부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를 성토하기도 했고, 차라리 국제 재판소를 찾자 했다. 어떤 이들은 군대를 파견해 끝장을 보자고도 했다. 정치인들은 그들에 호응하며 핏대를 세웠다.


그러다가 누군가 조심스레 말했다. “차라리 독도를 파괴해버리자. 동해를 평화지대로 만들자” 대담하고도 용기 있는 주장이었다. 사실 독도는 누군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섬이 아니다. 절경을 지녔으나 관광지가 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섬이었고, 의미를 찾자면 겨우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상징일 뿐이다. 독도가 처음 주목받은 것도 러일전쟁 당시 거점을 삼기 위해서였다. 독도는 미래에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없을 것이다. 독도는 전쟁에서만 의미가 찾을 수 있는 존재다. 물론 독도 파괴 주장은 곧 미친 소리 취급당하고 묻히고 말았다.


이제 강서구로 눈길을 돌려보자. 옛 공진초등학교 터에 추진 중인 장애인 특수학교는 ‘국립 한방병원’ 설립이라는 이슈에 부딪혀 난항을 겪었다. 중재하고자 했던 교육청은 예상 밖의 저항에 당황했고, 지역구 정치인은 갈등만을 부추겼다. 주민들은 손가락질하고 소리 높였고, 장애인 학부모는 잔인한 사회에 체념한 듯 무릎을 꿇고 빌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제안한다. 그 땅에는 아무것도 세우지 말라. 독도를 파괴하여 작은 손해를 볼지언정 큰 평화를 얻을 수 있듯, 그 공터에 장애인 특수학교도, 국립 한방병원도, 누군가를 위한 그 무엇도 세우지 말자. 장애인 특수학교는 다른 곳을 찾아보자. 정 서울이 어렵다면 안산 등지의 수도권이라도 좋지 않겠는가. 정부와 교육청이 장애인 가족에게 부가적인 교통 지원책만 제공해도 학교의 지리적 한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물론 국립 한방병원도 다른 곳이어야 한다. 어떤 이들의 주장대로 장애인 특수학교가 강서구에 있을 이유가 없듯 국립 한방병원도 강서구에 있을 이유는 없다.


그 땅은 그대로 두자. 보면 볼수록 아까워하도록 공터로 그대로 두자. 욕심의 결과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자. 기억하지 않는 사회를 꾸짖는 기념 공간으로 만들자. 텅 빈 사회를 조롱하는 상징으로 두자. (1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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