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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Oct 06. 2019

소리를 듣는 습관

“아니 그걸 거기 넣고 있더라니까.”


잠에 빠져 있던 도철은 정은의 말을 듣고 머뭇거리다가 이내 물었다.


“대명사 잔치냐?”


도철은 잠시 뒤척이다가 은정이 쪽으로 몸을 돌리며 허리까지 내려간 이불을 끌어올렸다. 에어컨 바람이 등을 때렸다. 땀에 젖어다가 식은 이불 감촉이 좋았다.


“꿈에서 말이야.”


가끔씩 은정은 혼자 말하면서 도철에게 말을 걸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도철은 수시로 답답함을 표현했지만 은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 은정이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깊었다. 도철은 검은 태양 같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질문이 중요해졌다.


“꿈에서? 무슨 꿈이었는데?”


도철은 조바심이 났다. 태양이 지기 전에 그녀의 속이 알고 싶었다.


“그니까 꿈에서 말이지. 이걸.”


은정은 도철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여기다가.”


은정은 손을 풀더니 도철의 엉덩이를 만지다가 항문을 건드렸다.


“야!”


여전히 은정의 손은 도철에게 있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꿈이야?”


은정은 몸을 웅크리더니 도철의 팔을 찾았다. 도철은 팔베개를 내줬다.


“내가 남자였어.”


도철은 천장을 바라보는 은정을 힐끔 봤다. 눈썹이 귀여웠다.


“여자는 누구였는데? 나였어?”


은정은 실눈을 뜨고 도철을 본다.


“아니.”


은정은 도철의 겨드랑이에 바람을 분다. 도철은 움찔하지만 팔을 빼지 않는다.


“간지러워.”


은정은 도철의 가슴으로 머리를 옮긴다. 다시 그의 살갗에 바람을 불었다.


“우리 자다르 갔을 때 있잖아. 바닷속에 오르간. 파도칠 때마다 소리 나는 거기. 기억 나?”


은정은 여전히 도철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심장 소리를 듣는 건 은정의 습관이다.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는 의식 같은 행위였다. 타인의 생명 소리를 들으며 지금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거기서 너가 힐끔 보던 여자 있잖아. 그 여자, 나도 봤어. 예뻐서.”


도철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땠는데?”


은정을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그때 있잖아. 오르간 소리 들으면서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우리 비웃었잖아. 그냥 넣기만 하면 다 되는 거냐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정말 아름다웠어. 현실과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감탄하다가 깬 거야. 바다가 있고, 그 여자가 거기 있었고, 나도 거기에 있었다는 게 믿기질 않아.”


도철은 살갗에서 물방울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은정은 울고 있었다.


“신기하지 않아? 그냥 흘러가는 것만으로 연주하는 거야. 난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은정은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도철도 꿈과 여자, 그리고 오르간이 무슨 상관인지 묻지 않았다. 꿈을 꿔야만 알 것 같았다. 둘은 다시 잠이 들었다. (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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