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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Oct 07. 2019

생의 기쁨

지리산 법계사의 밤

산장의 밤은 공평하니 잠든 이에게나, 잠들지 못한 이에게나 깊기만 하다. 정상에서 샛말간 해를 만나려면 새벽 세 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잠들지 못하니 별수 없다. 몸을 옮겨 법계사로 향했다. 풍경소리 따라 여기저기 걸음 하다가 멈춰 섰다. 우리 어머니들이 당신들의 소중한 가족, 친구, 인연 또 그 무언가를 위해 빌고 계셨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경건하다. 한참을 바라보다 마당 한쪽의 바위에 앉았다. 어디에선가 저분들의 모습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야구공에는 실밥이 108개가 있는데, 이는 ‘백팔번뇌’와 닮았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이 108개의 실밥 중 하나가 공의 길을 달리한다. 그래서 공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 인생도 그렇다. 도무지 알 수 없다. 다만, 휘두를 뿐이다. 모든 타석에서 홈런을 치겠다고 살았지만, 홈런은커녕 안타 한 번 힘들다. 안달해도 매번 아웃이다. 그렇게 2군으로 떨어지진 않을까 불안해하고, 선수단에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초조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진 말아야 한다. 어머니는 날 위해 기도하신다. 그리고 설거지도 하셔야 한다. 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그게 무엇이라도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조심스레 법당 안으로 들어가 108배를 시작했다.


걱정이 들었다. 어디에서나 법도가 있고 그에 맞는 예절이 있을 텐데, TV에서나 보았지 방법을 몰랐다. 부디 지나가던 스님이 보시곤 혼내지만 않길 바랐다. 무릎은 바닥으로 향했다. 일 배, 이 배, 삼 배… 그렇게 58배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한번 해봐요.”


한 어머니가 내 옆으로 오셔 몸소 보여주셨다. 합장과 시선, 머리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선과 힘, 그리고 절제, 다시 합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주셨다.


아름다웠다. 무릎을 꿇고 절하시는 모습에선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내리는 듯 묵직했다. 일어나 합장하실 때엔 마치 커다란 연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넋 놓고 바라봤다. 짧은 1배의 시간, 그저 벌이라 여겼던 1배에서 어머니는 자연을 품으셨다.


서툴지만 그렇게, 108배를 마쳤다. 그리고 어머니와 대화했다.


어디서 왔느냐, 지리산에는 자주 오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 요즘에는 어떠냐, 많이 힘들겠다, 괜찮다, 그렇구나, 괜찮다, 다행이다, 다 잘 될 것이다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이해심 넓은 관대한 위로, 깊은 긍정의 대화였다. 헤어지며 나는 “항상 건강하세요” 했고, 어머님은 “또 인연으로 만나기를 빌어요” 하셨다.


칼럼니스트 김경은 아버지의 말로 대신 삶을 표현했다.


“내 어머니를 보렴. 시장에서 다라이 파는 여자의 고맙다 소리가 이상하게 가슴을 울린다며, 마당에 호박이 이렇게 예쁘게 열렸다며 좋아하는 내 어머니….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드는 생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단다. 넌 그걸 발견해야 해. 살면서 그때그때, 그 장소에 있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의무가 하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생의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어머니, 부디 어디서든 건강하시길.


(18.07.06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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