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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Oct 08. 2019

실현가능한 선택의 실패와 그 끝

넷플릭스의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이유와 까닭에 관한 드라마다.


한나의 자살을 먼저 알려주고 시작하는 드라마는 언뜻 보기에 ‘왜 그녀는 자살했는가?’ 찾아가는 추리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자살하기까지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알아가는 심리물에 가깝다고 여긴다. 이별이 결코 대문자 담론으로 정의될 수 없는, 가장 사적인 사건(강유정)이듯, 누군가의 자살 또한 그 이유를 함부로 타인이 재단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유보다는 까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원제가 13 Reasons가 아닌 13 Reasons Why인 것도 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까닭은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을 뜻하고, 이유는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를 말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자살한다면 특정한 이유(사건이나 사람)가 아니라, 수많은 이유가 모여 만들어진 까닭(조건)으로 비롯된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 차이를 극중 인물들의 죄책감으로, 자기 부정으로, 동정으로, 합리화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모두 범인일 수 있지만, 아무도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긴장을 잘 그려낸다.


방영 후 구글에 ‘자살하는 방법’이 검색수가 26%나 늘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같은 드라마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왜 ‘자살하는 방법’을 검색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처지가 한나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여겨서일 것이다.


‘자살 거꾸로 살자’ 같은 말로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전하는 이들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모른다. 자살은 막는 게 아니다. 자살도 선택이고, 살자도 선택이다. 진정 그들을 위한다면 자살 외에 다른 선택지를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자살 외의 선택들, 가족, 친구, 학교 등의 우리 사회의 선택들이 어떻게 실패하고 있는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과서이기도 하다.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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