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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Oct 05. 2019

사랑에 있어서 확실하게 더 불행한 사람은, 나다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이것이야말로 과연 사랑이구나’ 느끼게 해주는 몇 가지가 있다. 강원도 종주 중 맛본 동치미 막국수가 그렇고, 지금 사용 중인 맥북 프로 15인치가 그렇다. 4년 전, 구입 이후 다섯 번도 켜본 적 없는 초록색 뱅커스 램프가 있고, 양재동 골목의 카페의, 참으로 포근하고 따뜻했던 소파도 사랑이었다. 그 카페는 커피맛도 참으로 행복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쓰고 달았다. 그래서 사랑이었다. 여름마다, 바다에 갈 때마다 챙기지만 한 번도 입지 못했던 알록달록 꽃무늬 남방도 사랑이며, 매일 입는 익숙한 청바지도, 가끔 입는 찢어진 청바지도 빠져서는 안 될 사랑이다. 사라진다면, 어떤 이유로 간에 내게서 떠나간다면 슬플 만한 사랑들이다.


그렇기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랑은 더욱 슬프다. 어떤 식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 내게 있어 츠바이크가 그렇다. 나는 츠바이크처럼 쓸 수 없다. 기약 없는 노력과 보답받지 못할 고통. 츠바이크처럼 표현할 수 없고, 노래할 수 없다. 그만큼 집요하고 절박함을 그려낼 수 없으며, 그 정도로 아름답거나 섬뜩하게 보여줄 수 없다. 그가 위치한 사랑의 세계에는 내가 있을만한 자리가 없다. 사랑을 알아버린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확실히 더 불행한 것이다. 이런 익숙한 짝사랑은 대부분 읽을 이 없을 한갓 편지로 대체된다. 혼자만의 것이라 해서 환희와 고통의 정도는 달라지지 않으니 그의 책은 읽을 때마다 감탄하며, 그 책에 대한 서평은 쓸 때마다 절망한다.


언제부터 역사는 예술이 되었는가. 아니, 이것은 어떤 유희일까. 브로델로 대표되는 2세대 아날학파의 장기 지속적인 역사를 비웃듯 츠바이크는 순간에 천착한다. 그는 거대한 역사적 시간의 해류가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파도를 아주 가볍게 서핑하고 있었다. 서퍼는 바다의 깊이를 따지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은 바다에도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는 잠시 월드타워만큼이나 높은 역사적 순간의 파도를 거뜬하게 타고 있다. 만약에 츠바이크가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만든 파도를 탄다면, 내가 겪어낸 수많은 순간 중 하나를 적는다면 그 글은 과연 어떠할까. 상상한다. 뭐가 적힐 수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콘스탄티노플 정복, 워털루의 시간들, 스콧의 파토스, 헨델의 부활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간절히 원했지만 이뤄지지 않는 어떤 것 또는 그에 비견할만한 슬픔과 고통이 되어야만 사람들은 기억해줄까.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나와 같은 사람이거나 나와 다른 사람이거나.(이승우) “좋아하는 작가 있으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네, 츠바이크라고 독일 작가 있는데. 아세요?” 말해주겠지. 나는 그녀를 기꺼이 내 사랑의 작은 방주에 태우겠다.(1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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