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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Oct 04. 2019

무지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역사

전쟁과 여성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의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는 역사의 무책임 대한 질타다.


동정했다. 안타깝다고 느꼈다. 부디 잘 해결돼 이제 그만, 할머니들이 편하시길, 고생 끝내시길 바랐다. 정작 할머니들을 위해 내가 해드린 것, 한 것은 없으면서. 위안부 후원하고자 만든 흔한 기념품 하나 사본 적 없다. 단지 돈을 쓰고, 쓰지 않고 문제가 아니었다. 공감의 문제였다. 나는 그들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진짜 내 마음이었다. 감히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의 이론’을 쓴 아그네스 헬러는 ‘역사에 대한 무지는 우리의 이해력을 침해함으로써, 우리에게서 기준 혹은 비교하는 힘, 그리고 판단할 권리를 빼앗아 감으로써 우리의 판단력을 침해한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은 앎의 기쁨과 학습에 대한 만족을 모르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이들과 다르다고 자신했다. 때론 누군가를 무시하기도 했다. 한일회담 같은, 그런 역사적 굴곡을 모르면서 어찌 우리나라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선 역사에 대한 판단으로만 서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감히 나는 아그네스 헬러의 말에, 하나 더 넣고자 한다. ‘무지를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자기로부터 역사의 책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적극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책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증거를 모으고 자료를 검토하고 상황을 조사했다. 당시 군의 강제연행에 관한 심층적 연구와 비교, 그들 정부 담화의 의미와 그가 가진 일방성, 국민기금으로 대표하는 일본 시민 사회의 배상 운동이 가진 허구성, 감추어진 피해자 시선에 대한 강요 등을 들춰냈다. 그들의 변명 아닌 변명을 조목조목 따지고 본질을 외면하지 말라 조용히 요구했다.


더 중요한 의미는 숨겨진 질타였다. 책은 일본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리의 책임에 대한 고민과 역할의 실제적 행동을 촉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할머니들은 역사 속에서 다시 미아가 되어버리리라는 어떤 경고였다. 지난 2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연희(83) 할머니는 다시 꽃으로 돌아가셨다. 초등학교 5학년, 12살에 일본인 교장에게 차출돼 일본으로 끌려가 차마 말로도 하지 못하고, 글로도 적을 수 없는 고초를 겪으셨다. 그 끔찍한 기억으로 인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사셨다. 당시 기억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다니시며 평생을 치료를 받으셨다. 결국 사죄의 말, 사과의 말을 듣지 못하고 가셨다.


단속사회의 저자 엄기호 교수는 ‘사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통이 순간이 아니기에 사과도 순간이 될 수 없다. 사과는 일회용 휴지처럼 한번 사용하고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시간을 들여 반복, 지속해야 하는 행위다. 우리는 잊고 묻으려고만 하는 ‘사과’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명백한 잘못 앞에서 사과 한 번을 받지 못했다. 우리 스스로 책임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 정부가 실질적인 변화를 한다거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일본으로만 치우쳐진 책임의 무게추를 끌어 정부와 시민사회로 옮기자. 우리가 먼저 할머니들에게 ‘사과’ 드리자. 우리부터, 나부터 할머니들의 존엄을 지켜 드리자. 그게 남은 49분의 할머니들을 지키는 길이고 고 김연희 할머니를 다시 살게 하는 길이다. 다시 시작하는 길이다.(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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