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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Feb 25. 2020

정치란 무엇인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이 보여준 정치적 놀라움, 그리고 가능성

다른 대통령, 하나의 대통령


2012년 12일 19일 저녁 6시 카운트다운의 끝과 함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유력 당선인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였다.


놀랐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결과였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보다 ‘이것이 정치인가’라는 의문이 먼저 나왔다. 동년배를 비롯해 모두가 문재인 후보를 공공연하게 지지했다. 온라인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경쟁 구도는 그저 흥행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이정희 후보의 공격은 해프닝이었다.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추후 구성될 문재인 정부의 내각에서 벌써 갈등설이 나온다는 소식에 허니문이 짧지 않을까 걱정하는 수준이었다. ‘18대 대통령 박근혜’는 낯설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그렇게 말했다.


세대별 투표 결과를 보자, 나의 확신이 착각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18대 대선에서 20, 30대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각각 59.3, 66.5%였지만, 50, 60대 이상의 박근혜 후보 지지도는 63.5, 72.3%였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세대(世代)’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30년 정도 되는 기간’을 말한다. 그 30년 사이로 다른 대통령을 뽑았고, 하나의 대통령이 결정됐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최초로 과반의 득표였다. 게다가 여성 대통령이었다. 그것이 ‘민의’라면, 나는 ‘반의’였다. 민주주의 역시 전쟁이며, 승리의 기록만 남는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정치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정치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탄핵당했다. 놀랍지 않았다. 나의 ‘반의’는 ‘민의’가 됐다.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은 따지지 말자. 민주주의는 전쟁의 다른 이름이며, 패배자의 말은 변명이다. 승리자의 기록에 변명의 목차는 없다.


Therefore nothing about you is surprising.


놀랍고도, 놀랍지 않았던 5년의 정치적 격동은 영화 ‘링컨’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극 중 새디어스 스티븐스(토미 리 존스) 공화당 의원은 링컨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동료 의원을 꾸짖으며, ‘놀라지 않아 놀라울 게 없는 당신은 재선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놀라지 않았던 그 공화당 의원의 재선 결과는 알 길 없으나, 세상을 놀라게 했던 링컨의 수정안은 통과됐다.


‘놀랐다’와 ‘놀라지 않았다’ 사이에서 정치를 묻자. 정치란 무엇인가? 19세기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 했다. 비스마르크 아래 독일은 통일됐고, 현대 독일의 기초가 쌓였다. 전 체코공화국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은 정치를 ‘불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하벨은 벨벳혁명을 이끌었고, 동유럽은 민주화 혁명이 시작됐다.


가능성을 보고 놀라게 할 수 있어 당선되는 게 정치라면, 맞다.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P연합으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단일화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당선됐다.


혹자는 말했다. 바른 생각을 옳은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정치라면 한 나라의 정치는 종교인이나 학자들이 해도 된다고. 정치는 기반이 되는 철학과 파괴적인 전파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들 정치인들이 가능성을 말한 것일 거다. 링컨도 투표 당일 마음 졸이며 가능성에 기댔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는가? 우리는 작금의 정치에서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는가


서성거리지 않는 국민들


미술평론가 김진송은 미술에 빗대어 지금의 정치를 논한다. 그는 “관객은 미술의 장에 결코 들어갈 수 없으며 단지 그 주위에 서성거릴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만족해야 한다”며, “미술이 그러하듯 정치에 보통 사람들이 끼어들 틈은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파동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우리 국민의 정치수준도 높아져서 진실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근처에는 국민이 서성거리지 못했다.


2018년 대한민국 국회도 마찬가지다. 1번의 신체검사와 2개의 게이트를 지나고 방문 신청서와 신청 목적을 확인받아야만 서성거릴 수 있다.


영화 ‘링컨’에서는 서성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노예제 폐지가 담긴 13차 수정안 투표 당시 흑인들은 투표장 2층에서 서성거렸다.


영화에서 전장에 나온 링컨은 지나가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네 명의 군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생각으로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고 지나간다. 그들은 정치인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가능성의 시작인 셈이다. 정치를 보고 놀랄 가능성을 묻기 전에, 우리는 서성거리고 있는가 따져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만 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을 쓴 파커 J. 파머를 인용하며 마친다.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어린이, 노인, 정신질환자, 가난한 사람 그리고 노숙인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고통을 겪을 때 우리 민주주의의 성실성도 고통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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