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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Dec 18. 2019

잘난 돈

바리스트 밀롱도의 『 조건 없이 기본소득 』

바리스트 밀롱도의 『 조건 없이 기본소득 』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의 선전포고다.


두 권의 책을 두고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거의 ‘저자’ 따라간다. 이번에도 비슷한 고민이었다. 파리냐? 뉴욕이냐? 선택은 ‘파리’. 썩 괜찮은 표지를 가진 첫인상이 좋다. 게다가 얇지 않은가.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고 넘기며……이내 깨달았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는 것을. 카뮈로 시작해서 수많은 프랑스 작가와 저자들의 글을 읽었다. 심지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라는 프랑스 인문 잡지도 사다 읽었다.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던 깨달음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야?’


문장의 문제인지, 문맥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구성도 거의 완벽에 가깝다. 자신의 주장에 맞는 통계를 제시하고, 저명한 학자들의 연구결과와 발언을 인용하면서 대중의 편견을 교정해주면서도 건방지지 않다. 그런데 읽기가 힘들다. 뭐랄까. 프랑스 사람들은 저녁을 3시간 동안 먹으면서 심도 있는 토론을 한다는데, 마치 그 녹취록을 옮겨 놓은 것 같달까.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책은 문장의 간결함을 위해 최선을 다한 티가 난다. 역자에게 감사한다. 후기에서 자신이 책을 쓰며 짜증을 냈던 주변인들에게 왜 사과까지 하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페이지를 마치며 또 다짐한다. 프랑스 사람 책은 제발 피하자고.


복지를 포함한 사회 정책은 정말 돈이 필요하다. 이것도 돈, 저것도 돈, 다 돈이다. 현물로 보급해도 우선 필요한 것은 돈이다. 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마음’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는 월급도 ‘마음’으로 주소서. 내 ‘마음’도 보태리다.) 오죽하면 박근혜 정권이 당선되자마자 노령연금 20만 원을 곧바로 포기했겠는가. 왜 자신들의 영원한 신도들을 배신했겠는가. 지지율 높을 때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는, 나중에 터져서 같이 죽어버릴 정도로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의 정책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또 기존의 정책에서 적당한 정도의 예산을 추가해 효과를 내기도 어렵다. 또 어린이집의 CCTV 설치 사안처럼 기본권의 충돌이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결부되어 단기간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


국회는 해결할 능력이 없고, 국민은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으며, 행정부는 얼른 다른 예산이라도 통과되어야 하니 논의는 매번 대충 끝나고 만다. 길 가다 물어봐라. 어린이집 CCTV 어떻게 해결되었는 줄 아느냐고? 예전의 여느 것들처럼 묻혔다. 삼위일체는 종교의 것만이 아니다. 이러니 처음에 복지 예산으로 배정해놓고도 과메기 축제 같은 쪽지예산에 밀려 삭감되는 경우가 많다. 지역 국회의원의 횡포를 탓하지만, 전국 사회복지 회관에 연필 몇 자루 나눠줄 요량보다는 지역 부흥의 관점에서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언젠가 우리 이모님 저녁 뉴스 보시다가 말씀하셨다.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해도 돈이 제일 잘났다.”


그래서 전략이 중요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임하는 방법이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피케티의 말처럼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이익을 범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만들어 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불안했다. 모든 직업은 가치가 있다니, 신뢰의 문제라니, 계산기를 두르려 보라니 등등 허무맹랑한 말만 하고 있다. 결국 변죽만 울리다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을 때, ‘안타깝게도 아직 방법이 없다’는 저자의 결론에선 조금 서글펐다. ‘기본 소득’의 실현의 불가능함을 ‘기본 소득’을 연구하는 사람에게 직접 들으니 참으로 무력하다. 그래서 조금 희망이 든다. 정치가 뭔가 해 줄 것이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자세가 마음에 든다. 밀롱도가 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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