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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Dec 18. 2019

당신을 위해 남겨둔 저녁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대학 시절, 나 학교 가는 열찻길에도 시인과 같이 전력이 끊기는 구간이 있었다. 심하게 밝았던 열차 안은 어둑한 빛으로 가득해진다. 흔들리는 열차 안, 어렴풋한 조명 아래, 감춰졌던 외로움이 모습을 하나 둘 드러낸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마다 ‘꼭 그 애의 손을 잡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이젠 사라진 애틋함이다.


한강의 시는 ‘내색하지 못한 상실감’을 꿈꾼다. 「파란 돌」에서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라고 노래하며 꿈에서 느꼈지만 잃어버린 존재, 혹은 기억의 감각을 회고한다. 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다. 상실감마저 떠나보내야 하는 이중의 상실감은 베개에 남은 눈물 자국이다.


삶은 온도를 허락하지 않기에 우리는 베개에서 멀어져야 하며, 하루를 시작해야만 하는 열차 안에 있다. 한강은 쉬이 보내지 않는다. 이 스쳐 지남을 하루로 끝내지 않고 죽음으로까지 이어낸다. 「여름날은 간다」는 일상적 죽음에 대한 헌사다.


‘검은 옷의 친구를 일별하고 발인 전에 돌아오는 아침 차창 밖으로 늦여름의 나무들 햇빛 속에 서 있었다 나무들은 내가 지나간 것을 모를 것이다 지금 내가 그중 단 한 그루의 생김새도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어리석은 인간은 어쩔 수 없다. 기억하는 인간은 기쁨보다 슬픔이 많다. 인간은 감각의 노예라, ‘혀와 입술을 기억해내고 나는 후회했다’(「저녁잎사귀」). 우리는 시지프스 신화처럼 돌고, 돌고, 돌고, 돈다. 우리의 열차는 순환선이다.


한강의 글은 유난히 아프다. 시인은 너무나 예민하기 때문에 세상이 아픈 만큼 아프고, 세상보다 더 오래 아프다고도 한다. 아프지 않은 시인이 사는 사회는 없다던가. 시집 뒤편, 그녀의 쓴 짧은 글 한 구절 가져와 끝낸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

(18.07.09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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