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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Feb 25. 2020

안암동 체인지 사우나

로마에 가면 목욕탕에 가고, 페르시아에 가도 목욕탕을 가야 한다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있어 행복의 늘림 말은 ‘월요일 쉬는 일요일’ 이리라. 세상 행복한 오전을 보내고 목욕탕으로 향한다.


안암동 거리는 밤새 비를 맞은 후,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뻤다. 밝은 회색빛의 도로가 반사하는 청량함이 ‘얼른 네 몸도 닦으라’ 재촉했다. 그래도 땀은 내지 말아야지. 마음만 날래 보채며 체인지 사우나로 찾아간다.


사실 오늘도 세신을 받아야 하나 망설였다. 2주 전, 왕십리 3H사우나에서 받았던, 강력했던 건강마사지 탓이다. 3H 세신사 분의 손길은 벽돌처럼 뭉친 나의 어깨 근육을 깨어버려 돌멩이로 만들어줬다. 세신사 선생님 말씀 “꼭 다시 오라.” 하셨으니 그때는 돌멩이가 진흙으로 변하겠지.


그래도 목욕탕에 왔으니 세신을 받아야지. 할지 말지 고민이 들 땐, 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목욕탕에 가고, 페르시아에 가도 목욕탕을 가야 한다.


“2만 원 세신으로 부탁드립니다.”


첫인상이 좋다. 얼굴 구멍 뚫린 마사지 침대를 가진 목욕탕은 생각보다 드물다. 또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만 누우라는 메시지를 주는 세신사는 우선 믿을만하다. 불안함 속에 시작한 짓의 결과는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이것도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똑바로 누웠다. 얼굴을 감싼 수건에서 저릿한 냄새가 났다. 오래된 수증기 냄새였다. 하지만 이내 다른 수건으로 바꿔주셨다. 실수 이리라.


어쩔 수 없는 출근의 흔적이 어깨와 목에 남았다. 세신사 선생님이 가볍게 어깨를 치자, 긴장으로 말려 올라간 뒷덜미의 근육이 반응한다. 눈을 감자. 숨을 내쉬자. 의심을 버리자. 몸을 맡기자. 마음을 풀자.


오른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세신은 스멀스멀 오르고 내렸다. 어깨를 거치고, 상반신으로 지나 발가락에 닿았다. 무릎을 올리고 안쪽의 숨겨진 살이 타월을 거친다. 물과 섞여 침대 위를 부유하는 작은 건더기가 살에 느껴진다. 아니지. 느껴질 정도면 작은 게 아닌가?


같은 방식으로 왼쪽을 돌았다. 이때쯤 되니 정신이 몽롱해진다. 이 분은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긁어내듯 밀어내던 왕십리 세신사 선생님과는 다른 느낌이 좋았다. 가볍고도 냉랭했다. 그러나 소홀하지 않았다.


“엎드려.”

“네. 엎드려.”


자연스러운 복명복창이다. 비록 세신사 선생님이 상급자는 아니지만, ‘기꺼이 당신의 말을 따르겠어요’라는 의지를 보여주면 더 잘해준다. 과감히 구멍에 얼굴을 넣고 배를 대고 누웠다.


가볍게 등을 훑어내고 마사지가 시작되었다. 경험이 부족한 이가 글을 쓰며 가장 절망적인 순간은 ‘적당’을 말할 때다. 강하고도 약하고, 부드럽고도 거칠며, 아프고도 섬세했다. 그 표현할 수 없는 ‘적당함’의 압력이 나의 어깻죽지와 날갯죽지를 눌렀다. 마모되는 근육의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작은 의심은 사라지고 믿음만 남았다.


세신사 선생님의 팔꿈치는 어깨를 돌려주며 곳곳을 누르는 곳곳을 눌렀다. 아니 다듬었다. 깨진 돌멩이 같던 내 뭉친 근육들은 위스키에 담는 아이스볼이 되었다.


모두 끝났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된 것이 아니라 오늘 풀려야 할 근육이 더 없다. 욕심내어 더 누른들 아플 뿐이다. 이렇게 또 몇 주를 버틸 몸의 공간을 만들었다. 만족스럽다. 역시 세신은 언제나 옳다. (2018.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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