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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May 26. 2020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여자가 남자를 사랑한다. 남자도 여자를 사랑한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기도 하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생기고,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기도 했다. 사랑 규칙은 무너져갔다. 적어도 사랑에서만큼은 남녀의 구별은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랑 자체가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점점 태어나지 않았기에 사랑이 줄어드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여자라거나, 남자라거나 따위는 사랑의 전제가 아니었다. 그냥 사람이기만 하면 그만인 시대가 왔다.


임신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가 되었다. 성폭행이라는 단어는 사라졌고, 폭행의 형법이 강력해졌다. 이외에 유리천장과 같은 성별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점점 잊혀 갔다. 가해자로부터 사회적 교육을 받았던 자식의 자식의 자식들은 다 죽었다. 죽음으로 해결됐다. 이렇게 ‘이 또한 흘러 가리라’는 가르침은 더욱 깊게 성전에 새겨졌다.


사회가 달라지자, 환경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자 인류는 변했다. 진화였다. 한 세대의 기간 동안 인류는 번영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자연은 끊임없는 진화를 요구하고 인간은 적응에 익숙하다. 


점점 유전자 변이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형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수천 년의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는 크고 작음으로 구분됐지만, 이제는 있고 없음으로 기준이 달라졌다. 여기까지 인류는 감당할 수 있었다. 위치는 그대로였으니까. 


인류가 처음 맞이한 충격은 엉덩이에 가슴이 붙은 여자 아이가 발견된 날이었다. 앉을 때마다 아팠던 아이는 실제로는 아픈 게 아니었다. 두 번째 충격은 손가락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성기가 달린 남자아이가 태어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의 겨드랑이에는 자궁이 있었다. 간호사는 차트에 그의 성별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몰랐다. 성별란이 의미 없이 형식적인 칸에 불과했지만, 아무것도 적을 수 없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앉은 키은 어떤 숫자라도 있지만, 그 남아는 어떤 성별도 없었다.


인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일 수 있을까.


2215년, WHO 대책회의장


“비스코비츠 박사, 그래서 달팽이로 어쩌겠다는 겁니까? 인간 유전자를 변형하겠다는 말입니까?"

“네, 우리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달팽이의 유전자를 받아들인다면 가능합니다."


비스코비츠 박사의 말에 장내가 웅성거렸다. 희망도, 절망도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진화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달팽이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도 될 수 있고, 여자도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동시에 두 가지 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지요. 인간은 하나의 신체에서 두 개의 성을 담기 위해 욕심을 냈던 것입니다. 그 무의식이 발현되고 있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말이었다.


“인간은 ‘진화’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감춰왔던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달팽이 유전자를 인간에게 합성한다면,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날 시점부터 인류는 다시 정상적인 인체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작용은 없습니까?”

“안타깝지만 있습니다. 태어날 모든 인간은 여성이 변이 되기 전에 겪었던 생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난소와 정자가 한 몸에서 나오니까요. 몸의 형태에 따라 배출의 방식만 다를 뿐입니다."


회의 투표 결과 비스코비츠 박사의 제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죽고 사는 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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