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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Feb 25. 2020

생명이라는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

존 러스킨의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은 생명을 멀리서 찾는다.

공동체는 같은 목적으로 움직여서가 아니라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공동체다. 가족이라는 불명확한 대명사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것의 바탕에는 죽음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공동체는 자본주의와 어울릴 수 없다. 선택이라는 우선 가치를 둔 이상 죽음은 필수적이고, 공동체는 자본주의를 용인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도 공동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공동체로 향하는 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하늘로 오른 이들이 있으니 스타케미칼의 차광호가, 쌍용자동차의 이창근이, 한진중공업의 김진숙이 있다. 공동체에서는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하나가 일으켜 세울 수 있고, 홀로 설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완벽하게 홀로 섰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이 사회의 공동체에 속하지 못했다.


송경동이라는 시인이 있다. 동료 시인의 말 따라 김수영의 저 유명한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명제를 안타깝게도 착실하게 실천하는 시인이다. 그는 생명을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라고 했다. 오직 그 무기로만 싸우고 있다. 러스킨의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내려놓을 수 없었다던 간디에게 송경동의 시집을 보내겠다. 아마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 생명의 경제학은 찾기 힘들고, 생각보다 잔인하다. 나중의 사람 몫은 없다.(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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