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뷰

생명이라는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

존 러스킨의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 은 생명을 멀리서 찾는다.

by SEOK DAE GEON

공동체는 같은 목적으로 움직여서가 아니라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공동체다. 가족이라는 불명확한 대명사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것의 바탕에는 죽음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공동체는 자본주의와 어울릴 수 없다. 선택이라는 우선 가치를 둔 이상 죽음은 필수적이고, 공동체는 자본주의를 용인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도 공동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공동체로 향하는 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하늘로 오른 이들이 있으니 스타케미칼의 차광호가, 쌍용자동차의 이창근이, 한진중공업의 김진숙이 있다. 공동체에서는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하나가 일으켜 세울 수 있고, 홀로 설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완벽하게 홀로 섰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이 사회의 공동체에 속하지 못했다.


송경동이라는 시인이 있다. 동료 시인의 말 따라 김수영의 저 유명한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명제를 안타깝게도 착실하게 실천하는 시인이다. 그는 생명을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라고 했다. 오직 그 무기로만 싸우고 있다. 러스킨의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내려놓을 수 없었다던 간디에게 송경동의 시집을 보내겠다. 아마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 생명의 경제학은 찾기 힘들고, 생각보다 잔인하다. 나중의 사람 몫은 없다.(1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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