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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Jan 21. 2020

무엇인 줄 알았는데 그 무엇도 아닌 게 되어버린 무엇

아베 코보의 『 모래의 여자 』

아베 코보의 『 모래의 여자 』 는 인간의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다.


분명하게 존재한다. 눈으로도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굳이 손을 뻗어 만지지 않더라도 바람에까지 날려 살에 붙기까지 한다. 자신을 밟는 것들을 삼켜버리기도 한다. 세상을 이루는 땅과 바다의 사이에 있는 것, 닿을 수 있는 땅이면서도 잡을 수 없는 바다의 성질을 가진 것, 무엇이지만 그 무엇도 아닌 것, 그것이 모래다. 언제까지나 땅과 바다에게 밀리지만 어디로도 의지가지 할 수 없는 그것이다.


만약 내가 모래에 빠지면, 아니 들어가면, 아니 빠지면, 그게 아니라 들어가면… 나는 모래로 빠지는 것인가, 들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 해당하는가, 아니면 둘 다 해당하지 않는가.


모래는 시간으로부터 태동했다. 그러니까 모래는 인간의 미래다.


p선생이 떠올랐다. 그 말투, 그 눈빛, 그 시선, 그 수줍음, 그 교태, 그 몸짓, 그 손길, 그 투정, 그 앙탈, 그 새침함, 그 태도, 그 질투, 모래의 여자 모든 것들이 p선생을 닮아 있었다. 아니 딱 p 선생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래 속에서 갇힌 나의 모습은 그럭저럭 살아있다. 예전 나도, 이제 걷기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슬플 때 신두리 해수욕장에 찾았다. 바다를 두고 걷던 나는, 어느 순간 안개에 덮여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도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한참이나 모래사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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