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kdaegeon Dec 19. 2019

동치미 막국수와 인문학

강준만 외 여럿, 『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강준만 외 여럿이 쓴 『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은 긍정의 인문서이다.


지난주 강원도 동해안 자전거 종주에서의 일이다. 마지막 지점인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향하는 길이었다. 춘천으로 넘어갈 버스 시간에 맞추려면 점심 끼니 치르기가 애매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여행에서의 밥 먹기는 사명에 가까우니 쉬이 넘겨서는 안 된다. 많이 먹고 빨리 달리면 된다.


자전거길에서 벗어나 국도를 타고 들어간 곳은 막국수집이었다. 맛집이라고 찾아놓고 가긴 했지만, 막국수는 엊그제도 먹었고, 어제도 먹었다. 시원하기밖에 더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이내 자리에 앉아 복귀 루트를 고민하던 중 음식이 나온다. 살얼음이 섞인 동미치 국물 담긴 작은 대야에, 주먹만 한 막국수 오롯이 담긴 그릇이, 단출했다. 조심스레 대야를 들어 한 모음 한다. ‘어?’. 곧바로 막국수에 국물을 부어 넣고 급한 마음에 면 겨우 적셔 한 젓가락 올린 다음, 대차게 입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터져 나오는 육성, ‘아, 정말 사랑한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사랑인가.


정신없이 먹어낸 후, 느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사랑이었노라고. 혁오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도 끼리끼리 하는 것이라고 알아버린 나는 좀처럼 사랑 비슷한 것을 해 본 지 오래되었고, 사람이 아닌 것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불현듯 찾아온 이 환희의 감정은 마음으로 가는 길은 역시 위장을 경유함을 증명하니, 나는 어제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 동치미 막국수를 떠올리면 글을 적는 이 순간도 입에는 침이 고인다.


이 책을 읽어낸 후, 동치미 막국수의 애틋함을 떠올리는 이유는 이렇다.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해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힘들어야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절망스럽다면 이것이 절망이구나 말할 수 있고 도움이라도 청할 수 있을까. 백수에 탈모 정도면 가능할까. 연인에게 버림받고, 빚이 2000 정도면 힘든 수준이구나 인정받을 수 있을까. 개인파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들은 이런저런 궁금증의 애매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준다.


강신주는 절망의 순간과 그 경험이 가지는 나름의 효과를, 로쟈는 어쩔 수 없는 욕망의 무한 계성을 소설로 설명한다. 고미숙은 시니컬하게 팔자소관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려주고, 강준만은 ‘의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자신감을 주었다. 그럴 수도 있으니 말하라고 말이다. 정여울은 네 잃어버린 신체성의 회복을 촉구하며, 문태준과 정병설은 상상력의 가능성을 다시금 알려준다, 노명우는 개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안과 그 공백 기간을 인정하게끔 도와준다.


그들의 문장을 나의 인식과 경험으로 담아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되면 막국수를 먹고 ‘사랑한다’ 말했듯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인생을 성난 얼굴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치미 막국수 먹으러 가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나아가는 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