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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Dec 19. 2019

나아가는 서사

칼 세이건, 『 창백한 푸른 점 』

칼 세이건의 『 창백한 푸른 점 』은 어떤 서사에 관한 책이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그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저 유명한 게오르그 루카치의 자조 섞인 한탄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서글프다. 언제부터 행복은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고, 그저 만족하는 것만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바다 위 에서 보이는 별빛마다 모두 가지려 했기 때문일까. 별빛에 대한 꿈은 그저 욕심으로 남아야 했다.


1990년 2월 태양계 외곽에 도달한 우주탐사선 보이저 2호는 지구의 사진을 한 장 보내온다. 희미한 붉은 띠 위로 작게 찍혀있는 푸른 점 하나, 그 외롭고 쓸쓸한 작은 티끌, 지구였다. 가만히 작은 점을 들여다본다. 1990년 2월 지구,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그때의 내가 있다. 사진 속 지구에 있는 나는 5살이다. 다섯이라니.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 새삼 느낀다.


작은 기억 하나, 아마 유치원이었던 것 같다. 놀이터에는 정글짐이 3층 높이로 있고, 땅에는 모래가 깔려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한 손에는 신발을 들고 있다. 모래장난이라도 하고 있었을까. 그저 이유도 모른 채 웃고 있는 모습뿐. 그뿐이다. 5살의 나는 이미 내게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의 나는 저기 저 외롭고 쓸쓸한 푸른 점에 남아있다. 지금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나’의 모습들도 저기 사진에 찍힌 1990년 2월의 작은 지구에 있다.


‘공간은 거의 비어 있다’는 칼 세이건의 말처럼 1990년의 6살의 내게, 남은 인생은 거의 비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떤 것들로 많은 부분이 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또 잊어버리는 중이다. ‘잊는다’와 ‘채운다’는 왜 이리도 잘 어울릴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 버려야 하는 것들까지도 기억하려 한다면 과욕이다.


이 모순 아닌 모순은 필연적으로 지워져야 하는 슬픔을 동반한다. 그렇게 비어낸 공간과 기억에 우리는, 다시 어떤 것을 채워야 하는 의무 혹은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것이 행복이든, 추억이든, 기쁨이든, 사랑이든, 이별이든, 욕심이든, 서글픔이든, 서러움이든,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리고 또 지워야 한다. 잊을 수밖에 없다는 정해진 슬픔과 함께. 그렇게 내 인생의 드라마 속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구라는 인물이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듯.


다만, 저멀리 우주를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고 있는 보이저 2호처럼 우리들의 서사도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1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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