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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Jan 20. 2020

당신들이 겪은 어떤 상처

김동인 외 여럿, 『 한국단편문학선 2 』

김동인 외 여럿이 쓴 『 한국단편문학선 2 』 는 지나버린 상처의 경험담이다.


작가가 삶의 그늘을 발견하는 것이 사명이라면 독자는 기어코 읽어내고 공감하는 것으로 책임을 완수한다. 그러나 어떤 작가의 발견하고 적어낸 균열의 장면이 내가 가진 평면과 도무지 닿지 않기도 한다. 또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해서 짧은 단편소설을 몇 번씩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닿았는데 지금은 멀어져 버린, 어느 영화 제목 따라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린’ 단편들도 있다.


단편을 꾸준히 읽어왔지만 멀리 가봐야 김승옥이었다. 한 때 손창섭에 빠지긴 했어도 작가 특유의 암울이 좋았던 것이지, 시대적인 상황은 안중에도 없었다. 한국문학단편선 2는 내가 읽었던 우리나라 단편 중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 그래서 읽어내기 어려웠다. 물론 인간사 예나 지금이나 다 비슷하다는 점에서 서사의 구조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어떤 ‘사변적’임이다. 묘사를 넘어서서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상황, 행동들을 따라가면서 내가 그토록 거부해온 ‘사변적(思辯的)’인 것-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또는 그런 것- 들로 닿아 있었다. 물론 전쟁 전후, 당신들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라 모르진 않다. 그러나 역시 그때 그들을 지금 내가, 읽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았던 단편들을 꼽자면 박경리 ‘불신시대’, 황순원 ‘비바리’, 손창섭 ‘혈서’다. 감히 박경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현대와 맞닿아 있었다. 철저하고도 치밀하게 삶과 심리를 보여주는, 아무리 시대가 달라지더라도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말이 통할 수 있음을 보여 주였다. 믿음과 의심, 그리고 돈과 돈, 또 돈으로 이어지는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모습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황순원의 ‘비바리’를 뽑은 것은 다분히 에로티시즘의 산물이다. 상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손창섭의 ‘혈서’, 소설 속의 이해할 수 없는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나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인간군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기에 조금 슬펐다. 어느 정도 팬심이 들어간 선정이기도 하다.


이 단편문학선과 함께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평론집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짧다면 짧은 영화 2시간 동안, 길다면 긴 평론 10페이지 남짓의 분량 동안 우리는 실로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대사마다 문장마다 장면마다 상황마다 제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면서 내던지고 만다.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고민한다. 그때 그것이 무슨 뜻이었을까 하며. 영화든 단편소설이든 사람의 욕망에서 비롯된바, 나 역시 장승리의 시 ‘말’의 한 구절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여러모로 무력한 나에겐 요원한 일이다.(1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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