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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Jan 20. 2020

나의 어머니는 오월 즈음에 광주에 있었다

박정운의 『 오월의 사회과학 』

박정운의 『 오월의 사회과학 』은 현대사 논문에 가깝다. 저자 스스로 사회과학적 서술을 표방하고 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또 하나의 증언록에 가깝다. 지금까지 힘들지만 읽어왔던 수많은 오월의 서적들에 하나 더 쌓아졌다. 그래서 ‘사회과학’이라는 학문이 무섭다. 다르게 판단하고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역사’라는 단어로 말미암아 오월을 왜곡시킬까 무서웠던 것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소수만, 그냥 전라도 사람들만의, 광주시민들만의 신성함, 혹자들이 말하는 ‘피해의식’으로 남았으면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오염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들에게 해달라는 게 없으니 그들도 내버려두고 말겠지. 그냥 건들지 말라고, 매년 행사에는 대통령 안 와도 상관없으니까 우리의 노래든 장소든 뭐든 바꾸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오월로부터 멀어지려는 행태였다고 『 오월의 사회과학 』이 알려줬다. 시간이 지워내는 참적을 나도 외면의 형태로 지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 깊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그래야 더 잘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그래야 다시는 이 땅에 그런 일이 생기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그 정도면 됐다면서, 나도 떠나버렸다. 한때 잠시 품었던, 나의 거대한 꿈이 떠오른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인간이 되자.’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거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오월 즈음에 광주에 있었다. 일이 나기 며칠 전, 광주에서 진도로 내려오셨다고 하셨다. 나의 어머니 스물세 살의 일이었다. 항상 역사는 가까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동아리방에서 술을 마실 때의 일이다. 아마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이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정치이야기로 나아갔다. 서로 알아듣지 말들을 한참을 지껄이다가 오월의 이야기가 나왔다. 정치 얘기에 현대사가 빠질 수 없다. 나는 흥분했고,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왜 그랬는지, 저들이 그러고 한다는 소리가 무엇인지, 진짜 토할 것 같은 사실들은 무엇인지, 그때 태어나지도 않은 나까지 어째서 죄책감을 느끼는지, 왜 숙연해야 하는지, 그것은 부채의식인지, 찾아본 적도 없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나는 왜 외우고 있는지, 어째서 조심스러운 역사인지, 군부정권이야 그렇다고 해도 2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빨갱이짓이네 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생각을 지닌 사람들인지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때 총든 새끼들, 명령한 새끼들, 국가라는 이름의 새끼들이 얼마나 개새끼들인지 갈파하고 끝내려는 순간,


나이는 많지만, 동기로 같이 들어온 형이 말했다. 자기 아버지가 거기 ‘공수’로 갔었다고, 니가 뭔데 흥분하냐고, 그들도 사정이 있었다고,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싸웠고,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더 따지고 들었는지, 술을 더 마셨는지. 역사는 여전히 곁에 있다.(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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