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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대건 Dec 17. 2019

국가의 이름으로

플라톤, 『국가』

플라톤의 『국가』는 국가라는 신앙에 관한 책이다. 


알튀세르의 말처럼 호명은 그 자체로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존재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이름은 일종의 주술이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가지는 의미는 종교와도 같다. 신전만 없을 뿐이지, 국가는 거의 기복신앙과 다름없다. 신은 없는데 신앙이 있달까. 신앙은 진보당 해산 정국에서 목격한 바 있다. 헌재를 비판할 때 ‘나는 진보당원은 아니지만’, ‘이석기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각자의 마음 저 깊은 곳에 ‘국가’라는 이름의 완전무결의 것에 반대할 수 없다는 항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 안에서 보호받고 안정적이길 바라지만, 동시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국가』는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자신의 형제 사이의 대화록으로 되어 있다.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 안의 각 계급이 다른 계급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제구실, 미덕을 다하게 하는 데 있다. 이는 공자의 정명사상과도 닮았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사회 성원 각자가 자기 명분에 해당하는 덕을 실현한다면 올바른 질서의 국가가 완성되는 것이다. 또한, 각각에게 주어진 미덕을 다르게 인식하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수호자는 총괄적인 지도자로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할 것을 강조한다. 공자는 군자는 ‘인’으로서 질서를 지킨다고 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는 30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바다에 빠지는 것을 지켜봤다. 그것도 전국민이 실시간으로 보았다. 정치인이라는 자들은 길을 잃었고, 따르는 자들은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 사회의 모든 것은 돈으로 통했고, 돈이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사회였다. 그래서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다. 전염병과 같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했고, 또 죽어갔다. 원망을 할 수도, 해봤자 소용도 없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은 아포리아이면서, 反대동사회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수호자는 없다. 공자의 군자는 없다. 모두 소인일 뿐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 국가에는 온통 위기이며 무시무시한 일만 있나. 미래와 희망을 찾을 수 없다.


그래도 벗어날 방법은 있다 한다. 맹자는 공자의 정명론을 발전시켜 ‘혁명론’을 전개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할 때’ 혁명을 통해 임금도 내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미덕, 비르투를 단순히 명분에 두지 않고 ‘힘’으로써 강조한다. 권력을 가진 자 뿐만 아니라 약한 자도 권모술수를 가까이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진 자들이 쓰는 권모술수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그에 정확히 대응해 이겨내라고 했다. 비도덕적이고 불의하니 피해버리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한다. 혁명을 한다 해도, 권모술수로 강자를 이긴다 해도 결국 국가는 남는다.


여기서 영화 『소수의견』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사건 판결 후, 사직을 한 홍배덕(김의성)은 변호사가 된다. 그 후, 법원에서 사건의 변호인이었던 윤진원(윤계상)과 마주친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국가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한다. 나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했다. 윤진원, 너는 그래서 무엇을 했느냐”. 개인을 지키는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국가는 옳은가? 적어도 이 시대 우리나라에는 소크라테스보다는 마키아벨리가, 공자보다는 맹자가 필요하지 싶다.(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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