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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Dec 26. 2019

타인의 불행으로 만들어진 안도감

에베 코지, 밥 빵 면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여전히 없지만 더 없던 그때, 내색하지 않는 부모님의 아픔을 모르던 시절, 나는 그저 조금 아프신 것이라 여겼다. 잠시 누워 계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불효막심하던 나.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나는 참 어색했던 것 같다.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운동을 같이 한다거나 등산을 같이 간다거나. 흔한 연애상담해본 적 없었고, 싸우지도 않았다. 대들어 본 적도 없다. 가끔 목욕탕에 같이 갈 뿐이었고 그마저도 내가 거부할 때가 많았다. 갈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차가운 목욕탕의 바닥에서 눕혀 놓고 때를 미는 게 싫었다. 더럽다는 생각도 들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목욕탕에 가면 나를 세신사분들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제 힘들다 하셨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 느낀 첫 번째 변화였다. 아마 그즈음부터 아버지의 살도 많이 빠지신 것 같다. 풍채가 좋으신 분이었는데 점점 왜소해지시고. 얼굴이 반쪽이 된다는 말이 그런 느낌일까.


아버지의 병은 당뇨였다. 하지만 이 ‘밥, 빵, 면’은 당뇨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거의 다이어트 서적에 가깝다. 둘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이니 어쩌면 건강해지는 서적이라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다. 다양한 연구결과와 사례를 바탕으로 ‘당질’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물론 익숙하지 못하는 용어가 많고 그에 대한 각주의 설명이 부족해서 아쉬웠지만,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그래서 읽히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기도 했다.


 당뇨병 환자나 그의 가족인 읽는다면 자신의 차트에 있는 내용들이 적혀있으니 더 마음에 와 닿을 듯하다. 또 선천적인 병은 치료하지 못한다는 솔직함에 놀라기도 했고, 의사가 약물보다는 식생활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에 적잖은 감동도 있었다. 얼마나 우리는 자본주의식 치료법에 물들어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실천하기만 한다면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적극적으로 권할 것이라는 말은 하고 싶다. 병을 가진 아버지에게 병의 치료법을 조언하는 아들의 조심스러운 마음을 이해할까.


그 후로 10년이 더 흘렀다. 멀리 서울 병원에 올라오실 때마다 아들 구실이라도 한다고 따라다닌다. 매번 정기검진 받으러 오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매 끼니마다 인슐린 주사 맞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드시고 싶은 것 못 드시고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금세 피곤해지는 몸이 얼마나 당신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지 이제는 안다. 


병원에 앉아 다른 환자분들을 본다. 아버지의 모습과 비교하며 ‘그래도 많이 건강해지셨구나’ 생각한다. 타인의 불행보다 나은 자신의 다행으로 만들어진 안도감이다. 아픈 사람이 없는 세상은 없지만, 그래도 소망한다. 모두 건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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