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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Dec 20. 2019

슬픔의 번역서

김애란 등이 모아 적은 『 눈먼 자들의 국가 』

김애란 등이 모아 적은 『 눈먼 자들의 국가 』는 슬픔의 번역서이다.


관용구에 불과했던 4월이 실체적 절망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슬픔마저도 노력해야 하는 시대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 여하에 따라 공감의 깊이는 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노력의 정도에 따라 슬픔의 속성은 변한다. 누군가에게는 내던져버리고 싶은 짐짝이다. 누구에게는 마음이 되어 눈물로만 말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또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살아가는 세계가 된다.


미쉘 푸코는 “진실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실존의 형태를 선택한다”라고 했다. 각자의 진실은 다를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모습도 다르다. 어떤 이들이 가진,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진실은 이제 이해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만약 작가라는 이름을 쓰는 이들에게 가져야 할 사명을 하나 준다면, 이 ‘슬픔’에 대한 번역의 책임감을 줄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명사와 동사, 형용사와 부사를 주고 부탁하겠다. 이 ‘슬픈 봄’을 부디 말해달라고.


『 눈먼 자들의 국가 』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슬픔이다. 읽으면서 욕을 했고, 눈물을 참았고, 답답하고, 숨이 막혔고, 눈물을 참았고, 고민하고, 따졌고, 또 눈물을 참았고, 그리고 찾아오는 무력감과 슬픔, 견디지 못해 결국 울었다. 그 눈물마저도 바다로 향하여 그들을 짓누르는 차가운 바닷물이 되어버리기에 함부로 울 수도 없다.


이 작은 책은 너무나 무겁고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위로하자. 각자의 방식으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당신도 부디 읽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나와 같이 아팠으면 좋겠다. 함께 노력하자. 진실과 슬픔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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