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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러 May 24. 2020

5월의 비

지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5월의 비입니다. 아파트의 낮은 난간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는 소리가 제 작은 방에 조용히 울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방 창에도 빗방울이 그려지고 있는지요?


저는 며칠을 앓아누웠습니다. 내내 잠들어 있다가 잠시 정신이 들어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행여나 요새의 전염병이 걸린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전문가의 말을 들어 안심하다가도, 그런 병도 아닌데 이렇게 아파 누울 몸이란 생각에 슬펐습니다. 연이틀을 고생하고 난 후, 이제 배가 고파오는 걸 보니 다 나아가는 듯합니다.


함께 사는 동생에게 아픈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형이 그렇게 오랫동안 잠든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고 말합니다. 살아온 삶을 다시 사는 게 늙음이라는 데, 아직 제게도 처음인 게 남아 있나 봅니다. 다만, 남은 새로움들이 낡아감일까 두렵습니다. 더 큰 아픔, 더 큰 슬픔만이 남아있다면 남은 시간에 대한 설렘이 생길 수 없으니까요.  


아픈 날 동안 다시 또 아프기 싫다는 바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다짐해봤습니다. 매일 1시간씩 다리를 움직이기, 스마트폰 멀리하기, 담배 끊기, 소주 안 마시기 등등. 아까는 곧바로 일어나 옆동네까지 걷다 왔습니다. 목적지 없는 발걸음이었지만 꽤 멀리 다녀왔는지 돌아오니 57분 동안 걸었다고 스마트폰이 알려줍니다. 오는 길에는 목캔디도 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편지를 적습니다. 당신에게 응원이라도 받고 싶었나 봅니다.


언젠가 어제처럼 아프던 날, 내 옆에 있어주던 당신을 떠올립니다. 어찌할 줄 모르고 울다가 또 내 옆에서 잠들다가 깨서 또 울던 당신. 그런 당신의 부은 눈을 본 저는 웃음을 참지 못해 얼마나 힘들었던지. 참 아프고도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비가 내렸던 것 같습니다.


아픔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세월은 흘렀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습니다. 부디 당신이 겪을 아픔도 제게 있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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