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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Mar 11. 2021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2021년 3월 6일 아트센터인천

책으로 인생을 배운 저의 삶은 이런저런 충돌이 많았습니다. 배움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이러라는 거야, 저러라는 거야 갈등의 연속이었죠. 읽는 게 좋아 계속 읽어 겪다 보니 참 살며 감정적으로 외로웠던 때가 적잖았습니다.

프랜시스 톰프슨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그래서 기나긴 고통 속에서 하나의 빛을 찾으며 살아간다. 그게 운명 이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다 또 읽었습니다.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매일 아침, 떠오르는 찬란한 해를 보고, 바람을 느끼고, 초록의 나무를 보며 생명력을 느껴보라. 장대한 클래식을 떠올려라. 바흐를 듣고, 베토벤을 들어라. 비발디를 듣고, 쇼팽과 타레가, 그리고 슈만을 들어라. 짧은 인간의 생은 오직 희열로 채워도 모자라다.

이렇게 오고 가며 삶은 그런대로 살아졌죠. 지난 저녁, 또 하나의 인생을 배웁니다. 삶은 삶대로 그대로 바라보며, 무언가, 자신이 품은 어떤 것을 닮아가는 것임을요.

백발의 거구는 무대로 시선을 내리며 입장합니다. 온통 검은 슈트 때문인지 뒤로 넘긴 머리는 유달리 희게 보였습니다. 그 앞에 놓인 스타인웨이도 그런 모습이었죠. 세 다리에 버틴 거대한 검은 몸통 앞에 살며시 올려진 흰건반. 그는 피아노였습니다.

그렇게 연주회는 시작되었고 슈만이 들려옵니다. 첫음을 듣는데 눈물이 다 나더군요.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과 그의 삶 그리고 피아노. 아베크로 시작해, 새벽의 노래, 유령 변주곡에 이르기까지, 곡 사이마다 긴 정적까지 연주였습니다. 아니죠. 그 공기 그 분위기도 아마 연주였겠죠.

얼굴을 감싸는 모습에선 산장의 피아노에 앉은 그를 떠올립니다. 그 산장은 자작나무 둘러싸여 있습니다. 창안으로 햇빛이 드리고, 그 빛은 가늘지만 날카롭습니다. 부유하는 먼지는 떠오르듯 내밀리듯 방황합니다. 연주를 마친 그는 그때에도 똑같이 얼굴을 감싸다가 창밖을 바라보았을 겁니다. 저도 그가 연주하는 슈만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송도는 여전히 바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람 맞으며 세웠을 아트센터인천 공연장 안 분위기는 그렇게 따뜻했나 봅니다. 예당에서 들으실 분들에게도 마음 닿은 연주회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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