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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Apr 12. 2021

손민수 피아노 리사이틀

2021년 3월 15일, 롯데콘서트홀

원래대로 라면 작년 9월에 끝나기로 했던 그의 여정입니다. 연주회를 마치고 텅 빈 무대를 바라 보니, 2021년의 날에 막을 내린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에게, 우리에게, 또 저에게 지금 만큼이나 구원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을까요?


2021년 초, 저는 쓰고 적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어두운 글들이 적혀, 다시 읽고 놀라 쓴 글 전부를 지워버릴 때도 많습니다. 생각에는 가시가 가득하고, 그 가시에 누군가 찔리는 상상을 합니다. 쉽게 쓰자 유혹은 많고, 누가 읽긴 하겠어라는 태만도 생겼습니다. 


무력감에 세상으로 눈을 돌려도 , 밀리면 죽는다는 공포가 가득합니다. 그때의 저는 정말 어떻게 사는 건지 모르겠더군요. 저만 그랬던 걸까요? 객석으로 입장하며 즐거운 이들을 보니, 웃음이 들다가도 허무가 제 마음을 엄습합니다. 그래도 사는 게 일이라고, 이렇게나마 버티는 내가 대견스럽다가도, 그것도 잠깐, 삶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지럽습니다. 그렇게 무표정의 날들, 무의미의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연주회에 오기 전, 걱정이 많았습니다. 감상 중 딴생각이야 일상다반사지만, 적잖이 울적한 상태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건 도박에 가깝습니다. 실패한 자기 위로는 합리화에 불과하니까요.


첫 프로그램인 여섯 개의 바가텔은 그저 멍한 상태였습니다. 감상이라기보다는 앉아 있었다는 말이 맞겠죠. 그런 후, 30번 프레시티모의 강한 타건에서야 정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베토벤의 음악보다 손민수의 음악으로 들었던 날이었습니다. 노년의 베토벤이 연주하는 게 아닌, 베토벤의 제자가 침대의 그에게 이렇게 연주하면 되냐고 물어보는 듯했습니다. 어디에서는 부드럽게, 또 어디에서는 강하게, 그리고 거기부터 마음을 담아서.


베토벤 소나타의 별명은 피아노의 신약성서라고 하죠. 특히 후기 소나타는 정말 하나의 책을 읽는듯한 느낌입니다. 각각의 악장들이 온전한 자신의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드라마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손민수의 건반이 좋습니다. 정말 깊이 눌리는 기분일까요? 음표 하나에도 이렇게 뜻이 있다고, 한번 자세히 들어보라고 말해줬습니다. 시간의 축복을 받은 이 음악 앞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손민수는 일전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베토벤 소나타 공연을 남기고, 어디론가 도달하고 있는 중이라 말합니다. 그곳은 피아니스트에게, 저에게, 롯콘에서의 관객들에게 모두 다르겠지요. 제가 다다른 곳은 우주였습니다. 새로운 우주는 간절한 세상에만 열리는 것이니까요. 어떻게 피아노로 우주를 여나 싶지만, 그때의 복받치는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단어는 우주뿐입니다. 사라진 것은 음악이며, 살아난 것은 마음이라, 한 달에 지난 지금까지 저는 여전히 손민수의 우주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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