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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Apr 07. 2021

피아졸라 100주년 KCO with 윤소영 후기

2021년 3월 11일, 롯데콘서트홀

퇴근 후에 깨달았습니다. 이어폰을 사무실에 두고 나왔더군요. '오늘 밤 망각을 들으니까 잊은 건가'라는 헛생각도 들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10년 만에 망각을 실연을 다시 듣는다는 기대가 컸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프로그램이 바뀌었습니다. 롯콘에 도착해 창밖 보이는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네요. 피아졸라 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 오블리비언, 망각이 프로그램에서 빠지다니. 차라리 천사를 빼지!라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엔리코 모리코네를 위한 헌정곡이 추가되었지만, 기쁨과는 별개로 허탈감을 지울 수 없더군요.


올해는 피아졸라 탄생 100주년입니다. 피아졸라, 말해 뭐할까요. 반도네온으로 표현된 음울하고도 짙은 탱고 음악은  멀리 아르헨티나, 평생 가볼 날이 있을까 싶은 그곳의 어느 항구를 상상하게 합니다. 누릿한 조명 아래, 2-3평의 무대에서 누군가 이름 모를 노래를 부르는 항구의 술집을요. 그러다 문이 열리면 비릿한 생선 냄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다가 쓰러지겠죠.


이번 공연은 음악감독 김민이 이끄는 KCO 롯콘의 상주 연주단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롯콘은 집으로 가며 자주 찾는 곳이라, 그런 만큼 자주 만날 것이라는 예감에 기대감도 컸습니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연주자마다 해석 또한  달라서 연주자의 느낌을 엿보는 것만으로 즐겁기도 합니다. 그래서 윤소영이 있기에 괜찮다는 마음으로 객석에 입장합니다.


엔니오 모리꼬네 음악은 역시나 평화롭습니다. 오보에의 깊고 곧은 음색은 홀을 가득 채웁니다. 첫음을 들으면 '흐음~'하고 긴장이 풀리며 의자로 흡수됩니다. 편곡자를 보니, Deborah Kang이라는 분인데,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데보라가 생각나더군요. 그 OST도 엔리오 모리꼬네의 작품이죠?!


한참을 감상에 빠진 , 피아졸라 타임입니다. 어떻게 피아졸라로 분위기를 전환할  있을까 걱정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끄러움은 제몫입니다.


짙은 올리브로 꾸민 윤소영은 천장을 다 끌어내릴 듯한 강한 보잉과 무대를 울리는 역동적인 리듬의 스텝을 선사했습니다. 긴 곡 중간에 눈을 감고 들어보기도 하는데, 한순간 놓치기 싫더군요.


특히, 다섯 악기를 위한 콘체르토에서 첼로 주자의 솔로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정말 첼로 소리가 어쩜 저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이걸 오늘 듣고 끝난다는 게 서글플 정도였어요. 연주되면 사라져 버리는 소리, 빛날수록 깊은 어둠이라는 뜻은 보이는 것만 아니라, 듣는 이에게도 가혹하다 생각했습니다.


사계 역시 멋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봄을 가장 좋아하는데, 찢어질 듯 연주해줘서 대만족 하며 감상했습니다. 유튜브에 KCO가 올려준 예전 녹화 영상이 있으니 무대의 분위기를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윤소영 짱짱~!


이런 제 아쉬움을 알았는지 앵콜로 오블리비언이 흘렀습니다. 항구에서 집으로 돌아와 찬장에서 술병을 꺼내는 느낌이네요. 피아졸라를 연속으로 몇 곡 듣고 나면, 그 어떤,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에 사무칩니다. 그래서 술집에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까요? 누군가와 함께 왔다면, 와인바라도 갔을 텐데 싶었던 밤입니다.


https://youtu.be/q_h1zEif4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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