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kdaegeon May 11. 2021

글쓰기는 그리기다

나의 글쓰기 3

글쓰기는 그리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릿속에 떠올려진 어떤 이미지를 그림 그리듯 글로 옮기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그라미 두어 개를 겹쳐 구도를 잡아 둔다거나, 색의 조화를 미리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눈을 감고 보이는 걸 그대로 적어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마음을 비울 때 마음이 찬다는 말처럼, 눈을 감으면 글을 쓸 수 있는 게 보인다. 


그걸 기억하다 보면, 하나의 이미지만 머물지 않는다. 마치 꿈처럼 잔상과 잔상이 흩어지고 뭉친다. 그걸 하나, 하나 잡아 그저 옮겨 쓰는 것만으로도 실현되는 게 글쓰기다. 설명을 위해 백건우 리사이틀을 다녀와 적었던 리뷰를 그려낸 경험을 떠올려본다.


지난 3월 열렸던 그의 연주회는 백건우의 슈만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내 첫 피아노 선생님은 '대건님은 슈만이 어울릴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음악이란 참 어렵다. 그게 뭘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다. 그래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알고 싶어 자주 들었다. 잘 듣고 싶어서 많이 찾았다. 슈만의 연주회라면 매번 갔다. 거기엔 무엇이 있을까.


하지만 슈만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말년의 그는 정신병을 앓았고 자살하려 했다. 이번 연주회에 오르는 곡들도 그때 쓰인 곡이었다. 그런 슈만이 내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담을 수 없었고, 음악을 듣는다고 해도 글은 쓰이지 않을 것이다. 그때 백건우가 보였다.



나무, 피아노, 바람, 햇빛, 흙, 그리고 슈만. 그의 뒷모습을 보자, 슈만이 다가왔다. 아니, 슈만을 그리는 백건우가 보였다. 연주회를 마친 후, 나는 이렇게 적었다. 


'얼굴을 감싸는 모습에선 산장의 피아노에 앉은 그를 떠올립니다. 그 산장은 자작나무 둘러싸여 있습니다. 창안으로 햇빛이 드리고, 그 빛은 가늘지만 날카롭습니다. 부유하는 먼지는 떠오르듯 내밀리듯 방황합니다. 연주를 마친 그는 그때에도 똑같이 얼굴을 감싸다가 창밖을 바라보았을 겁니다. 저도 그가 연주하는 슈만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글쓰기가 정말 어려운 것은 무엇을 써야 할지 다다르는 과정에 있다. 그 어떤 것을 떠올려 마음속으로 그려내는 노력 없이 글은 없다. 하지만 그걸 찾아가는 길을 걷다 보면 글은 자연스럽게 쓰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좁은 방 안 적갈색의 업라이트 피아노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은 선생님과 내가 있던 그곳을 떠올렸다. 나는 박자대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선생님은 자꾸만 구부려지는 내 등허리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고 있다.


여전히 나는 왜 그때 선생님이 내게 슈만을 권했는지 알 수 없다. 그건 분명, 아직 내가 슈만에 대해 그려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 여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기력하면서 살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