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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May 15. 2021

엄마의 내 이름에 대하여

1월이었던가, 2월이었던가. 어제 꿈이 좋지 않았다며 걱정이 된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통화는 당시 일이 풀리지 않았던 우리 형제의 이야기로 이어갔다.


"저는 괜찮아요.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내가 아무리 돈을 잘 벌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물론 그렇지 않지만, 엄마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아니고 결혼할 시기를 헛되이 보내고 있는 나를 보며 '우리 아들 어쩌나, 인생이 풀리지 않네'라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통화는 주변 지인 자식 자랑에 기죽어서 못살겠다는 투정으로 이어지다가, 왜 전화를 자주 안 하냐는 잔소리와 함께,  가족밖에 없다, 가족에게 잘하라는 당부로 계속된다.


그도 그런 것이 동생은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고, 이젠 '말하면 잔소리라고,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속으로만 응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빠 역시 퇴직 이후 점점 쇠약해지는 걸 눈으로 봐야 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매일이 속앓이다.


"그래. 열심히 살자. 기도 많이 하고."


응어리진 마음의 토로와 달래고 달래는 위로가 반복된 통화 끝에 본론이 나온다.


"대건아. 동생이랑 너랑 이름을 바꾸자. 이미 정해뒀다."


이유를 물어보니, 내 이름이 너무 무거워서 인생길을 막고 있다는 말을 들으셨단다. 듣자마자, 카드부터 각종 서류 변경할 게 떠올라 '귀찮아요'가 나올 뻔했지만, 잘 참아내고, "정리도 할 겸 괜찮은 거 같네요"라고 말했다. 그때 등기 준비 중인 일이 있어, "당장은 어렵고 조금 미뤄야 한다"는 게, 다행히 핑계가 됐다.




사실 나 역시 내 이름이 좋지 않았다.  너무 딱딱해서 싫었다. 동그라미, 네모 하나 없어 발음도 어려웠다.


'석'이라는 성부터 돌?을 연상시키지만, 그렇다라도 다음 이름에서 풀어줄 수 있는데  'ㄷ' 'ㄱ' 은 단단함 그대로 이어진다. 아빠와 동생의 이름에는 'ㅇ' 이 하나씩 들어있어서인지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 든다.


간혹 이름이 멋지다며, 강한 느낌이 든다고 칭찬해주는 분들도 계셨다. 그래서였을까. 강하다는 건, 오히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인상을 줬다. 동그라미 하나쯤 들어있다면, 이름이 부드러워 말 걸기 쉬운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 괜히 이름 핑계 대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라 그렇다.


'대건'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인 '김대건'에서 따왔다. 하지만 신부님 역시 세례명인 '안드레아'라도 불렸을 텐데. 조금은 억울하달까.




'누군가 이름을 불러준다는 행위'에 대해 자주 생각하다 보니, 대화에서 서로의 호칭의 모습을 두고 인연의 길이를 예측해보기도 한다. 난 꼬박꼬박 저쪽을 부를 때 ' ㅇㅇ님'이라 부르곤 하는데, 과연 저쪽에서는 나를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인연은 길고 짧았다.


어쩜 그렇게 '대건' 두 글자 듣기가 어렵던지. 다른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김춘수의 '꽃'을 몇 번이나 읽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래서 엄마의 제안이 생각하면 할수록 괜찮았다. 코로나 이후 사람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이름 불릴 일이 사라졌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를 일이 더 많아졌다. "대건아. 일어나자. 출근해야 해"




또 이름 하나 바꿔 엄마 당신을 기쁘게 해 줄 수 있겠다는 바람도 컸다.  내가 태어나기 전, 엄마와 아빠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성당 신부님께 찾아가 '대건'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래서 내 세례명은 '대건 안드레아'다.


그런 와중에 내심 엄마는 서운한 게 있었는데, 사실 당신 스스로 내 이름의 '미원'이라 정해놓고 계셨던 것. 그 당시, 아니 지금까지도 '미원'이라고 하면 조미료를 떠올린다. 하지만 엄마는 좀 더 철학적이었다. 아들로 하여금 '아름다움의 본질'을 닮으라는 뜻을 두셨다.


하지만 내 이름은 '대건'이 됐다.  그래서 아쉬웠는지, 나 어릴 적 한동안 대건이라는 이름 대신, '미원아~' 혹은 '안드레아'라고 부르셨을 정도로 마음에 두셨다. 다 크고 나서 이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는 '미원'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미루던 중에, 엄마는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요즘도 엄마는 10번의 통화 중 1번 꼴로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물론 나는 이미 '하긴 하겠지만, 조금 이따 할게요'를 밝혀둔 상태라, 주로 동생 이름은 언제 바꿀지 얘기한다. 그건 동생이랑 말해야 할 텐데, 굳이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저 자식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 부쩍 내가 먼저 이름을 바꿀까 마음이 든다. 게다가 엊그제 브런치 프로필에 닉네임을 지우고 실제 이름을 걸었는데, 이름 석자를 적고 나서 가만 바라 보니 그동안의 온갖 사연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엄마가 말한 새로운 이름도 좋다. 당신 본인이 지은 것인지, 어디 작명소에서 받아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안목 높고 까다로운 엄마가 선택했으니 그걸로 된 거다. 자꾸 '이름 변경 시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리스트를 적어볼까'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올해 안에 '석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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