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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러 May 26. 2021

그들의 생동감

그때의 감정을 잊지 말아요

정신없이 사는 와중에 문득 내가 보고 듣는 것 중에 진짜가 있긴 할까 의문이 듭니다. 하루 중 대부분 보고 듣는 건 무수한 픽셀로 이루어진 모니터와,  전화기 주파수로 타고 흐르는 목소리, 이어폰 너머의 녹음된 음악들이잖아요?! 


그래서 조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요즘 같이 만나지 못하고, 만질 수 없고, 듣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면요. 만질 수 있는 어떤 것, 상대의 눈과 인중을 번갈아보며 표정을 감지했던 그 느낌. 그 닿을듯한 생동감이 그리워질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생동감을 꺼낸 이유는 지난주  감상했던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 중 'Youth' 연주회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젊음'이라는 주제부터 생기가 넘치죠? 이날 공연에는 작곡가들의 어린 시절 혹은 젊은 날에 만든 음악들이 연주됐습니다.


특히 저는 연주자를 관객석 2열에 앉아 감상할 수 있어, 어림 잡아 2m 앞에서 그들의 손놀림과 눈웃음 하나까지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음악은 제가 기대했던 생동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첫 프로그램인 'Piano Quartet in C Major WoO. 36 No. 3'은 베토벤이 15세에 작곡한 곡입니다. 하지만 이 곡을 마지막으로 죽을 때까지 피아노 4 중주곡을 쓰지 않았습니다. 미리 알지 않았다면 모차르트의 곡이다 싶었을 정도로, 제가 알던 베토벤이 아니었습니다.


카미유 생상의 '타란틸라'는 처음으로 음악가로서 유명세를 맛보게 해 준 곡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작곡가이면서,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등 여러 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패니 멘델스 존. 멘델스존의 누나인 그녀는 동생이 작품을 쓸 때마다 빠지지 않고, 누나와 상의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부모의 반대로 음악의 길을 일찍 포기해야 했죠. 연주회에서 소개된 'Piano Trio in d minor Op. 11' 역시 그녀의 음악을 반대하던 부모님이 죽고 나서야 세상에 발표됐습니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니 지금까지 들어왔던 멘델스존의 음악과 정말 비슷하더군요. 그녀에게 음악이 허락됐다면, 우리가 알던 멘델스존은 그녀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요.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생동감이라고 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찬란한 무엇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베토벤처럼 시행착오의 모습, 생상스처럼 성공을 향한 욕망의 모습, 패니 멘델스존처럼 꿈을 접어야 하는 절망이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모습일 수 있다는 걸요. 


생동감은 그저 시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자기 생에 충실하고 부딪히는 사람으로부터 전해지는, 움직이는 감정이라는 걸 그들의 음악에서 배웁니다. 물론 연주자들의 감정 역시 그들의 연주를 통해 제게 오롯이 전달됐기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우리도 멀어진 와중이지만 우리가 좋아했던 사람들의 감정, 그들의 생동감을 잊지 말아요.




[이번주 찾아갈 연주회]

5월 24일, 더클래식 콘서트 필하모닉 창단 연주회

5월 25일, 그을린사랑

5월 29일, 문지영 피아노 리사이틀




편지 보내는 날을 조금 바꾸었어요. 일요일에 보내면 월요일에 읽으시겠지? 생각하니, 월요일은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화요일에 읽어 주면 좋겠다 싶어서 화요일에 밤감 한번, 목요일에 음악 하나 이야기 한번으로요. 음. 그리고 2주에 한번은 음악 이야기 혹은 에세이도 써보내려고 해요.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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