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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Nov 03. 2022

평범하게 존재하는 것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은 어느 골프장 클럽하우스 내 전시장에서였다. 흰 캔버스에 큰 점처럼 붓질된 그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오묘한 느낌을 들게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크게 감흥이 온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궁금증만 가지게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아까 저녁 약속 일정을 조금 남기고 잠시 아무것도 없던 시간,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여유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계단과 난간들 사이로 빠져나온 해는 벽에 머물렀다.


우연일까? 그 순간 내가 목격한 광경은 예전에 궁금증만 남겼던 이우환의 작품과 같았다. 점은 강렬했고 선은 날카로웠다. 빛의 그림자 속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 여백은 먼지 묻어 땟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건 해의 빛을 담아낸 가장 완전한 형태이자 빛이 아무리 강해도 가릴 수 없는 한계였다.


미술계에선 이우환 화백의 철학에 대해 캔버스 속 획과 여백으로 멈춤과 움직임의 역동성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들은 하나 혹은 다수의 점과 점, 선과 선을 통해 삶의 찰나를 관통해낸다는 것.


이제 조금이나마 이우환 화백의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할 것도 같으며, 그 고고해 보이던 예술적 철학은 오히려 내 시간 속에서, 아니 모든 이들의 시간 속에서 평범하게 존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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