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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kdaegeon Sep 01. 2023

나는 몸의 감각을 원한다

어릴 적 일요일이면 아빠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아빠 역시 뜨거움을 시원함으로 표현하는 분이었고 목욕탕을 하루 걸러 하루 가듯 자주 다녔다. 이후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갈 때면 성묘 후에 함께 목욕탕에 가는 것이 루틴이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목욕탕이 좋다. 피곤함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 시원하다'라고 느끼는 쪽도 아니지만 땀을 빼고 그걸 물과 함께 씻어내면 뭔가 산뜻하다. 그래서 그,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데, 그 땀내는 방에서 꼭 20분은 채우고 온다. 사실 목욕탕은 그걸 하려고 가는 거라고 봐도 된다.


아빠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때도 함께 밀었다. 초등학생(사실 국민학생) 때는 목욕탕 바닥에 눕혀놓고 때를 밀어주셨다. 그 반들반들한 목욕탕 바닥에. 적당한 표현이라면 굴욕적이라고 해야 하나. 어려서 느끼는 감정을 말로 적으려니 좀 직설적인데, 그때 그 정도 그게 그렇게 싫었다. 


암튼 그 이후로는 시간이 1년, 2년 지나면서 등만 밀어주셨고  5, 10년 지나면서 우리의 몸뚱이는 세신사에게 맡겨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나이 듦이 부자 관계에 영향을 준 첫 번째 사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런 초기 교육 탓에 세신은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은 꼭 해야 하는 의식이 됐다. 사는 게 좀 힘들고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에는 세신을 하러 가지 않아서 그랬다고 합리화까지 할 정도다.


사실 요즘 세신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몸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건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의리는 무익하고 신뢰는 스러진 이 시대에는 평범하다고 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목욕탕에서 세신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면 대부분의 고객은 60대 넘은 분들이다. 


그렇기에 굳이 세신을 받으러 다닌다는 건 별 이유 없이 좋기 때문이라는 의미라는 결론이 난다. 내가 나의 특징을 새삼 깨닫게 된달까. 나는 머리의 경험보다는 몸의 감각을 원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이러니 삶이 힘들 수밖에.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살았던 나의 인생사는 감각보다는 경험에 의해 판단하도록 길들여졌다. 둘의 간격은 T와 F만큼이나 크다. 태생적으로 감각을 원하는 사람이 경험으로 살려니 뭘 해도 갈팡질팡하다가 이도저도 안 되는 게 태반이다.


최근에 인내심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를 반성해 보니 2년 넘게 다닌 회사가 없었다는 점에서 화가 났다.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이 자연스럽게 삶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나는, 어느 정도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다. 


여기 브런치만 해도 그렇다. 몇 년 전에 한참 하다가 멈추고 몇 달 전에 한참 또 막 적다가 냉동 상태로 두고 이제 다시 해볼까 하고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니, 감각이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끈기 타령이니, 인내심 부족한 성격은 이 짧은 글에서도 드러나나 보다.


그러니 몸의 감각을 꾸준히 느끼는 게 인생 성공의 방도가 아닐까 싶다. 살았던 대로가 아니라 살고자 하는 대로 나아가는 행동. 돌고 돌아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세신 받으러 가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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